[깊이읽기 BOOK] 무슨 매력 있어, 그는 향을 찾아 세계를 떠돌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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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상의 향수,천상의 향기
셀리아 리틀턴 지음
도희진 옮김, 뮤진트리
326쪽, 1만6500원

예전 한 화장품 광고에서 여자 모델이 이렇게 외쳤다.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고. 인간이 살아가는 매 순간이 냄새와 맛에 저장된다는 프루스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후각의 기억은 어떤 감각보다 강렬하다. 때문에 낯선 여자에게서 연인의 모습을 느끼게 되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건이나 풍경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향인 ‘시그니처 향수’를 만들고 싶었던 저자는 향을 쫓는 긴 여정에 나선다. 원료가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어떤 과정을 거쳐 향수가 만들어지는지 두 눈과 두 발로 느끼기 위해 원료 산지를 직접 찾아간 것이다. 향수의 발상지인 프랑스 그라스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모로코로, 다마스크 장미의 재배지인 터키로 이어진다. 저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이탈리아 토스카니에서는 아이리스 향에 흠뻑 빠져들고 향료의 천국과도 같은 스리랑카와 인도를 거쳐, 예멘의 소코트라 섬에서는 향유고래 창자에서 나오는 가장 신비로운 향수 원료인 ‘용연향’까지 손에 넣는다.

향의 역사는 문명의 발달과 과학·의학·종교, 그리고 고대·중세·근대 세계와 모두 연계돼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은 시간과 공간을 주유하며 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매혹적인 향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묘사도 흥미롭지만 책은 향수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채워 담았다. 화학 제품으로 만든 향수는 누구에게 뿌리든지 똑같은 향이 나지만 천연 향수는 사람의 체취에 따라 다른 향을 낸다는 것,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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