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중국인 관광객 ‘쫓아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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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기자가 직접 겪은 일이다. 본사 중국연구소가 주관한 ‘2009 중국 청소년 한국 문화 고찰’ 행사에 참여한 200명의 중국 대학생들은 그렇게 센텀시티 앞에 서서 30분여를 묶여 있어야 했다. 세계 최대 백화점이라는 곳에서 말이다.

이 같은 ‘중국 여행객 무시’ 현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들과 방문한 용인민속촌에서는 마침 전통 혼례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있었다. 초례청 결혼 장면은 곱게 물든 단풍과 어우러져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감탄도 잠시 중국 대학생들의 얼굴에 지루함이 퍼지기 시작했다. 언어가 문제였다. 중국어는 물론이고 영어 설명도 없다. 한 학생은 ‘이 정도라면 자막 스크린을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초례청을 빠져나간다.

거리 표지판이나 관광지 안내문에 중국어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관광가이드’를 경험한 기자의 눈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영어가 있으니 됐지 않느냐’는 말은 궁색하다. 중국은 관광분야 타깃 마케팅을 해야 할 정도로 큰 시장이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어느 다른 나라 관광객보다 씀씀이가 크다. 지난해 중국인의 해외 여행객수는 약 4585만 명, 이 중 한국을 찾은 관광객은 약 137만 명으로 약 3%에 불과하다. 이웃국임을 감안할 때 최소한 20%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게 한국관광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우리는 흔히 제조업으로는 이제 중국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디자인·영화·패션 등 창의력이 요구되는 소프트(soft) 영역에서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 소프트 산업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관광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우리의 중국 관광객 맞이는 ‘온 여행객을 쫓아내는 수준’이다. 덤핑관광으로 싸구려 쇼핑센터를 전전해야 하고, 부실한 식사로 배를 곯기 일쑤다.

대표단과 함께 온 바젠웨이(巴建偉) 구이저우(貴州)사범대학 교수는 “한국은 깨끗하고 멋진 나라”라고 감탄한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다시 오겠느냐”라는 물음에는 “일이 있으면 오겠지만, 굳이 관광을 위해서라면…”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언제까지 우리는 돈 쓰겠다고 온 중국 관광객을 쫓아낼 것인가?” 중국 대학생들과 지낸 일주일 내내 머리에서 맴돌던 질문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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