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루이나이웨이 국수전서 '지독한'난투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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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중국의 여성바둑이 한국이나 일본보다 강한 것은 '여권(女權)' 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여권이 약한 한국이나 일본 여성기사들이 대부분 남자에게 이기기 힘들다는 자기암시에 걸려있는데 반해 여권이 센 중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 최강자인 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은 남자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누구보다 강한 기사다. 루이9단의 바둑은 이리하여 '절단' 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설의 여인국 아마존의 전사처럼 힘이 세고 강인한 그녀는 바둑이 시작되면 일단 끊고 싸운다.

하지만 루이9단은 17일 세계 바둑팬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한국기원에서 열린 국수전 도전기 첫판에서 원조 싸움꾼 조훈현9단에게 대마가 몰사하는 수모를 당했다.

두 사람이 바둑을 두면 일장의 난투극이 될 것이란 예상이었는데 예상은 그대로 적중하여 우변에서 시작된 싸움이 하변을 거쳐 상변까지 전판을 피투성이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기보> 를 보자. 흑의 조훈현9단이 1로 씌워 대마를 포위한 장면이다. 대부분의 기사라면 여기서 A에 붙여 삶을 구할 것이다.

하지만 루이9단은 2로 나와 3으로 끊더니 다시 6의 빈 삼각으로 기어나왔다. 지독한 수였다.

빈 삼각은 바둑에선 우형(愚形)의 표본이지만 모양의 미추는 따지지도 않고 결사적으로 밀고 나왔다.

막으면 끊겠다는 루이의 서슬 퍼런 도전에 조9단은 결국 7, 9로 길을 터주고 말았다.

이 장면까지는 루이9단 쪽이 오히려 재미있다는 평가였다. 12로 B에 뛰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루이9단은 조9단의 광속 스피드와 치고 빠지는 탄력 있는 변환술에 걸려 거의 전판이 지리멸렬해지고 만다.

전투에 관한 한 조9단은 '세계제일' 이란 평판이 있다. 따라서 싸워서는 조9단을 이기기 힘든데 루이9단 역시 백병전이 주무기라 끊지 않으면 승부호흡을 유지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다.

이 상극의 상대를 맞이하여 루이9단이 31일의 2국에서 어떤 작전으로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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