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자가 쓴 한국여자 비판' 펴낸 도다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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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당신과 무척이나 친하고 싶지만 일본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어요. "

18년전 친구라고 생각했던 한국인의 이 한마디가 한 일본인의 생애를 통째로 바꿔버렸다.

도다 이쿠코(戶田郁.39)씨. 대학에서 일본사를 전공하던 도다는 한.일학생교류 차원에서 한국의 지방대에 일주일을 머물 기회가 있었다.

한국인 대학생으로부터 '일제의 한국 강점' 을 난생 처음 들은 도다의 충격은 상당했다.

"명색이 역사학도로서 일본과 한국의 얽히고 설킨 역사를 전혀 모르다니 너무 창피했습니다. "

도다는 그후 일본에 되돌아가 무작정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뭔가 꼭 알아야 할 것들을 그때까지 놓쳤다는 절박감이 너무도 컸다.

결국 도다는 2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을 꺾을 순 없었다.

한국에서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벽안의 외국인에게 호감을 보이는 한국인이 비슷한 외모를 지닌 일본인에게는 적대감을 갖고 대한다는 것을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고대에서 2년간 일제시대에 관한 강의를 들은 도다는 이후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을 일본의 책과 저널에 싣기 시작했다.

한국인과 결혼할 때도 순탄치 않기는 마찬가지. 시댁에서는 "나를 죽여라" 라고 말리고 일본 본가에서는 "조센징은 안된다" 고 들고 일어서 말할 수 없는 마음고생을 겪었다.

"나 자신 한국가정의 아내와 며느리로 살았지만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 그래서 도다는 이런 감정들을 자유롭게 공유하기 위해 '일본여자가 쓴 한국여자 비판' 이라는 책을 최근 펴냈다.

동네 시장가는데도 화장을 진하게 하는 주부, 명절 때면 밥상차리느라 허리가 휘는 며느리 등 한국여인의 삶을 도다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도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인 아줌마들의 덕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情)이고, 이는 도다를 거의 '한국인' 으로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다.

"일본거리를 걸을 때면 많은 사람들이 저를 한국인으로 봐요. 내 몸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나봅니다. "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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