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세계화, 관건은 '나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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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호박, 당근, 버섯, 고사리 등 갖가지 나물에 매콤한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쓱쓱 비벼먹는 비빔밥의 맛.


비빔밥 중에서도 '전주비빔밥'은 다른 지역의 것보다 다양한 가짓수의 나물이 들어가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26일 전북 전주시에 '전주비빔밥연구센터'가 문을 열었다. 조리법이나 마케팅 방법을 표준화시키고 한식 세계화 바람에 맞춰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비빔밥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먹기 편한 냉동인스턴트 비빔밥의 가공도 연구된다.

◇ 고추장 보다 '나물'이 관건= 외국인들의 비빔밥에대한 인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단계로 보기엔 이르다. 비빔밥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대중 음식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일견 매운 고추장을 적게 넣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의외로 고추장의 양은 관건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 한다.

전주시청 전통문화국 박경희 팀장은 "최근 미국 뉴욕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비빔밥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는데 60% 이상이 소스로 매운 고추장을 간장이나 된장보다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고추장 보다 중요한 관심사는 따로 있더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비빔밥 안에 들어가는 나물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박 팀장은 "설문 조사 결과 나물 중에서도 시금치와 표고 버섯, 콩나물 등을 선호했다"며 "비빔밥을 냉동식품으로 만든다면 수분이 많은 나물을 촉촉하고 신선한 상태로 서비스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냉동 비빔밥을 만드는 것은 마케팅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로 꼽히고 있다. 이때의 관건도 나물이다. 나물은 해동되면 수분이 날아가 질겨지는 단점이 있어 특수 가공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수분이 많은 콩나물은 빨리 건조해지고 해동시키면 더 질겨진다. 박 팀장은 "나물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는 것은 비빔밥 세계화의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전주시 유명 비빔밥 전문점 '가족회관'을 29년 째 운영하며 비빔밥 '명인'으로 불리는 김연임(72)씨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맛깔스럽고 화려한 색감의 나물에 매력을 느껴 비빔밥을 찾더라"며 "비빔밥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나물을 어떻게 조리하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물의 색을 돋보이게 하고 질감을 살리는 방법은 따로 있다. 예를 들어 미나리는 밑 부분이 강하고 질긴 반면 윗 부분은 연하다. 때문에 데칠 때 한번에 통째로 넣지 않고 밑부터 먼저 넣어야 한다. 시금치도 통째로 넣지 않고 뿌리가 있는 밑단부터 윗부분 순서로 서서히 데치는 것이 중요하다.

데칠 때는 강한 불에 잠깐 데치고 소금을 넣어 색을 돋보이게 한다. 김씨는 이런 비법을 이번에 설립된 '전주비빔밥 연구센터'에 자문하기로 했다. 이같이 조리한 나물을 반건조시킨 뒤 급속냉동 시키면 질감이 살아날 수 있다고 한다.

◇ "건강·웰빙식으로 강조해야" = 비빔밥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맛을 내세운 마케팅과 더불어 건강식으로 강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전북대학병원 기능성식품 임상센터 채수완 교수는 "전통 한식의 대표격인 비빔밥은 재료 및 가공법의 특성상 성인병 원인인 인슐린, 중성지방, 복부비만 등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며 "성인병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시점에서 이 같은 점을 강조해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지인 입맛에 맞는 맞춤형 식재료 개발도 시급하다. 전주시 전통문화국 박경희 팀장은 "뉴욕 현지 설문 조사 결과 양배추와 피망 등을 넣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며 "비단 우리나라 나물뿐 아니라 현지인에게 친숙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양인의 의식 구조에 맞게 서비스 방법을 변형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주 소재 유명 비빔밥 전문점 '고궁'의 박병학 조리장은 "많은 반찬 가지 수를 줄이고 한 그릇으로 함께 식사하는 비위생적인 면을 고쳐 개인화시켜 서비스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이라고 조언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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