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 국제사회, 동티모르 사태 개입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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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파이낸셜타임스 9월8일자 사설

주민 스스로 독립을 선택한 동티모르에 독립의 환희보다 공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바하루딘 유수프 하비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함으로써 동티모르를 휩쓸던 테러 위협은 일단 수그러들지 모른다.

하지만 계엄이 꼭 필요한 조치였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의지만 있었다면 동티모르에 주둔하고 있는 2만명 이상의 인도네시아 군.경 병력만으로 반독립파 민병대를 통제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정치 지도자들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군부는 오히려 민병대의 행동을 지원하고 있다는 인상을 짙게 풍긴다.

그들의 목표는 지난주 유엔의 감시 아래 치러진 주민투표에서 75년 동티모르를 강점한 인도네시아 내에서의 자치를 거부하고 독립을 선택한 동티모르 주민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다.

인도네시아 다른 지역의 주민들이 동티모르처럼 하겠다는 것을 막으려는 바람 때문인 듯하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동티모르 주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독립을 허용하고 독립 과정에서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를 수행할 능력 또는 의지가 없다면 이제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

동티모르에서 진행되고 있는 학살을 감안한다면 유엔 평화유지군은 규모 면에서 너무 작고 파견 시기도 너무 늦을 수 있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

그것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대표단을 파견하고 뉴질랜드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담에서 전례없이 정치위기 회의가 소집됐으며, 호주가 동티모르에 군대를 파견할 준비를 서두르는 이유다.

국제사회도 현재의 동티모르 혼란에 대한 책임을 일부 져야 한다.

독립을 위한 여건도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카르타 정부를 압박함으로써 하비비 대통령에게 위험할 정도로 성급하게 주민투표를 실시하도록 강요한 점이 그것이다.

독립 과정에서 안전을 보장하고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도록 하겠다는 하비비 대통령의 제안을 그렇게 철석같이 믿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그런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어느 누구도 인도네시아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티모르에 파병하려고 애쓰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스스로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국제평화유지군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도네시아 군부가 동티모르의 독립이 인도네시아내 기타 소수민족들에 미칠 연쇄효과를 우려한다면, 동티모르 사태로 초래될지 모르는 혼란에 깊이 빠져들수록 단일국가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외부 세계는 인도네시아의 분열이 초래할 파급효과를 더욱 걱정해 영향력을 행사하길 주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대국이지만 극히 취약한 상태다.

국제통화기금 (IMF) 의 막대한 지원 프로그램에 힘입어 경제는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는 중이지만 지금 전기 플러그를 뽑아버리면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IMF의 주요 출자국들이 인권이 짓밟히고 집단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나라에 대한 지원을 정당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정리 = 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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