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여당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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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민이 정치를 떠나고 있다.

개혁의 당위를 부르짖는 요란한 구호도 있고 정치의 대지각변동에 대비한 각 정당과 정파들의 계산도 치열하지만 정작 우리 국민의 마음을 붙들어 둘 정치는 없다.

내년 선거일정은 이미 국민이 떠나고 있는 현실정치의 발걸음을 붙잡아 매고 있다.

*** 또 3金 장로정치 가능성

이대로 간다면 다음 선거에서는 우리 정치가 또 다시 지역주의의 병폐적 정치문화 속에서 헤매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이성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고질로서 불행히도 당분간 그 해악이 사라질 기미가 없다.

그리고 3金에 의한 장로정치가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보스와 지역분할, 그리고 세력균형이 서로를 지탱하며 커온 것이 한국 정치의 구조적 맥락인데 이 트라이앵글은 묘하게도 어려울 때 서로 더욱 결합하고 힘을 발한다.

거기에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실어증 (失語症) 은 깊어만 가고 있다.

새로운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집권여당의 선언은 내년 총선을 보는 여당의 위기의식의 발로라고 보인다.

내년 총선의 안정의석 확보 실패는 자명하게 정치불안정을 낳게 된다.

그리고 아마 조기에 '레임 덕' 현상이 나올 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정권이 지향하는 여러 가지 정책적 목표들의 실현은 물거품이 된다.

이것은 여당으로 하여금 또다른 정치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원치 않는 무리수를 두게 됨으로써 정치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도식 (圖式) 이다.

여당의 '내년 총선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는 외침은 그러나 단지 필요조건이다.

선거구제의 개혁과 새 인물론은 여당으로서 시도할 수밖에 없는 고육지책이나 이러한 처방은 충분조건까지를 포용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돛단배에 새 인물을 가득 태우고 출범하려 해도 바람이 알맞게 불어주지 않는다면 순항할 수 없다.

물론 과연 새 틀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할까가 우선 문제다.

중선거구제로의 전환은 그러나 그것이 우리 정치토양에 합당하냐의 규범적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다만 가능성에 관한 정치의 기술에 속하는 문제다.

그러나 정치자금법 등은 우리 정치의 생명력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전문성을 중시하는 새 인물론의 방향은 옳다.

다만 현 여권의 충원구도 속에서 그 이상에 맞는 검증된 인사를 얼마만큼 충원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 화합.신바람 정치로 가야

충분조건의 제1순위는 무엇보다 국민을 정치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이란 바람이 없는 돛단배는 순항하지 못할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받은 현 정치의 성적표는 물론 여야가 만든 합작품이다.

그러나 결국 정국을 주도하는 여당이 상당 부분 떠안아야 할 짐이다.

여당으로서는 이것이 개혁을 거부하는 세력의 조직적 저항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고 또는 야당의 자생력과 공동여당인 자민련의 정치적 비중을 다소 간과한 전략적 실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에 있어 국민의 요소의 중요성을 간과한 데서 오는 것이다.

세풍.총풍.북풍, 그리고 최근의 옷 로비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집권 이후 일련의 사건에서 국민들은 실종되고 정치의 혐오는 늘어왔다.

내년 정치 일정이 코앞에 닥쳤다고 할지 모르나 그럴수록 기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지도자가 국민 속에 있어야 한다.

꼭 만델라식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지만 화합의 정치, 신바람의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측근과 관료의 장벽을 넘어 대통령이 국민에게 다가서야지 거꾸로 국민이 어떻게 대통령에게 다가설 수 있는가.

다음으로 우리 정치의 살아 있는 곳을, 쓸만한 곳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썩은 곳, 도려낼 것은 다 안다.

못하는 것은 정치권이지 국민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우리 정치의 살아 있는 곳을 더욱 건강하게 하는 것이 개혁 못지 않게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여당의 새로운 틀짜기는 단지 내년 선거용만이 아닌 미래를 구상하는 장기적이고 발전적인 것이 돼야 한다.

여당의 책무는 한국 정치의 대승적 발전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이 정치로 돌아오는 것. 여기서부터 한국 정치는 다시 살아난다.

현인택 고려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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