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관점의 신화해석…칼라소 '카드모스와…'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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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탈리아 문단의 대가 로베르토 칼라소 (58)가 '20세기 관점에서 새롭게 쓴 그리스 신화' 란 부제를 달아 펴낸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 (이현경 옮김.동연.1만5천원) 은 88년 처음 출간돼 프랑스 최우수 외국도서상과 벨리옹 상 등을 받으며 15개어 이상으로 번역된 화제작이다.

지금까지 국내에는 토마스 벌핀치가 로마 시인인 오비디우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을 토대로 정리한 그리스.로마 신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미국 청교도 사회에서 성장한 벌핀치의 신화는 1세기전에 쓰여진데다 종교적 영향으로 인해 그리스 신화의 실체를 온전하게 복원하지 못한 '반쪽 신화' 로 폄하되기도 한다.

실제 신화 학자 조셉 캠벨도 "벌핀치의 신화는 크레타 지역 등의 고고학적 발굴과 비교신화학의 성과가 나오기 전에 쓰여진 것으로 신화를 깊이 있게 해석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고 평가한다.

이런 시점에 나온 칼라소의 '카드모스와…' 은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욕망이론과 칼 융의 분석적 측면이 가미된 작품으로 호메로스.오비디우스.벌핀치에 이어 그리스 신화 해석에 새로운 획을 긋는 작품이란 평가를 서구 언론들로부터 받아냈다.

특히 오비디우스의 신화가 인간과 신들이 조우한 결과 동물이나 식물로 변형해 버린 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칼라소는 신들의 '욕망' 에 중점을 두고 신화를 재창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칼라소의 신화해석에는 노골적인 장면이 자주 등장해 도덕성이 결여돼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도덕적인 논리를 강요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훨씬 편안하게 다가갈지 모른다.

또 그는 작가적 역량을 바탕으로 등장 인물들에게 각기 독특한 성격을 부여하는가 하면 현대 세계와의 관련성에도 주목하고 있어 신화의 의미를 한층 높이고 있다.

제우스가 카드모스의 여동생이자 페니키아 공주인 에우로페를 납치하기 위해 수소로 변신하는 '에우로페와 수소 이야기' 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카드모스가 여동생 에우로페를 찾아 나섰다 만난 하르모니아와 결혼하는 얘기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 칼라소는 이 글을 쓰며 독자들이 그리스 신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글을 쓰고 있어 신화에 과문한 이들은 빨리 읽어내리기 쉽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그리스 신화의 세계' 란 책을 펴낸 한국외국어대 유재원 (언어학) 교수는 "19세기 관점의 그리스 신화가 장악하고 있던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새로운 시각에서 현대적 관점으로 쓰여진 그리스 신화의 출간은 의미 있게 받아들여진다" 고 말한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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