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그먼 美MIT 교수, '이번엔 달러 폭락한다' 예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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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아시아 경제위기를 예견했던 폴 크루그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MIT) 교수가 이번에는 달러화의 과대평가를 경고하고 나섰다.

크루그먼 교수는 달러 가치가 폭락할 경우 회복기에 접어든 세계 경제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그의 홈페이지 (http://web.mit.edu/krugman/www/)에 실린 '달러의 위기?' 라는 논문의 요약.

◇ 달러 과대평가 이유 = 과대평가됐다는 근거는 미국이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등 주요 경제대국들이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극심한 경상수지 불균형 속에서 지금의 달러 강세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미국의 금리가 일본.유럽연합 (EU)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은 앞으로 달러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미국 장기채권의 실질 금리는 일본에 비해 약 2% 높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투자가들은 매년 달러가 엔화에 비해 약 2% 평가절하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재정수지 불균형을 감안하면 이 정도 평가절하로는 불충분하다.

◇ 달러 폭락의 이유 = 지난 85년 상황을 보자. 당시는 미국 국내총생산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현재와 비슷했던 시점이다.

당시 달러 가치는 달러당 2백40엔에서 1백40엔으로, 달러당 3.3마르크에서 1.8마르크로 급락했다.

현 상황에서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하락폭과 속도는 85년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고 빠를 것이다.

저금리로 엔화를 빌려 고금리의 달러 자산에 투자해 온 미국 투자가들이 달러화 매도에 대거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 달러 폭락의 영향 = 달러화가 폭락하면 회복세에 들어선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경제는 또다시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미국 경제는 만성적인 공급부족 상태인 반면 다른 나라는 수요부족 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이 이런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은 수입가격 상승으로 공급부족이 심화되고, 다른 나라들은 대미 (對美) 수출 급감으로 시장의 압박이 가중될 것이다.

◇ 대책 = 미국은 만성적인 공급부족 상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사실 미국은 인플레 조짐이 나타나기 전에 이를 해결했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시장개입을 통해 달러 폭락을 저지할 수 있을까. 정책기조를 완전히 바꾸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바람직한 대책은 일본.유럽처럼 유동성이 부족한 국가들이 스스로 획기적인 통화팽창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추가 화폐 발행이 곧바로 국내 수요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단지 달러화의 폭락을 둔화시킬 뿐이다.세계 경제가 당면한 위기의 핵심은 각국 정부가 과거의 정책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정책을 수립할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폴 크루그먼은…]

94년 '아시아 성장의 신화' 라는 논문을 통해 일찍부터 아시아 경제 위기를 예견했던 인물. 미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MIT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제경제 현안에 관한 활발한 저술활동과 언론 기고로 '전투적인 지성' 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아시아 위기 발발 이후 국제통화기금 (IMF) 의 긴축.고금리 정책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일본의 내수 진작을 통한 아시아 경제 회생을 주장했다.

또 위기상황에선 단기적인 외환통제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펴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아시아 각국이 성급한 자기만족에 빠져서는 안되고 ▶아시아에서는 인플레 방지보다 디플레 방지가 중요하며 ▶미국 경제의 근간인 내수가 급감할 경우 새로운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정리 =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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