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주룽지 '충돌'…중국 지도부 균열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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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국 지도부가 심상치않다.

장쩌민 (江澤民) 주석과 리펑 (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 (全人大) 상임위원장, 주룽지 (朱鎔基) 총리 등으로 대표되는 중도.보수.개혁의 집단체제가 불안해 보인다.

홍콩 언론들은 朱의 사실상 실각을 말하고 베이징 (北京)에서 활약하는 각국 정보기관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래서 매년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중국 지도부의 휴양지 베이다이허 (北戴河)에 올해 더욱 관심이 집중된다.

◇ 갈등의 발단 = 나토의 유고주재 중국대사관 오폭 (誤爆) 이 직접적인 계기다.

그러나 보수파는 4월말의 朱총리 미국 방문을 문제삼았다.

바람직하지도 않은 세계무역기구 (WTO)가입을 위해 미국에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것이다.

특히 군부의 반발이 컸다.

朱총리의 주도로 지난해 7월 기업활동을 금지하면서 군의 자금줄이 막혔기 때문이다.

보수파들은 朱총리 개혁이 '경제개혁이 아닌 정치개혁' 이라고 몰아세웠다.

◇ 전개 = 보수파 영수인 리펑이 주도하는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지난 4월초 국무원이 상정한 법안을 기각했다.

유례없던 일이다.

같은달 27일 인민들이 행정조치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하는 법안도 통과됐다.

6월에는 보수파 원로인 숭핑 (宋平) 과 덩리췬 (鄧力群) 이 江주석을 독대해 ▶미국을 견제할 것 ▶시장경제개혁을 늦출 것 등 두가지를 요구했다.

江주석은 이들의 요구를 수용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와중에 불같은 성미의 朱총리가 개혁 저항세력에 대한 분노를 江주석 앞에서 별다른 여과없이 토해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고함이 오갈 정도로 격렬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江주석이 朱총리의 경제권한을 자신의 측근들에게 하나둘 이양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즉 중국 지도자가 직접 챙기는 6대 분야인 외교와 당.군.대만.인사.경제 중 朱총리가 전담했던 경제까지 江주석이 직접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朱총리 측근 다이샹룽 (戴相龍) 중국인민은행장의 경질설, 또 부총리들에게 朱총리가 맡아오던 경제분야의 업무를 분담시켰다는 소문은 모두 이같은 江 - 朱간의 갈등 악화가 그 배경이다.

◇ 朱의 반격 = 지난 1월 7일 반부패 책임자인 리지저우 (李紀周) 공안부부장이 수뢰로 구속된 것을 비롯해 최근까지 보수파의 거두들이 상당수 부패와 수뢰로 구속됐다.

반면 내수확대를 이유로 공무원들의 월급을 인상해주기로 했다.

부부장급 (차관) 이상 고위 관리들의 주택도 단장을 새로이 했다.

국유기업 감찰팀을 조직해, 퇴직하는 능력 있는 관리 5백명을 재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파룬궁 (法輪功) 문제도 朱총리의 반격재료다.

공산당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라고 몰아붙였다.

대신 홍수는 내 일이니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당.정 업무를 갈라 누가 더 잘 하나 한번 해보자는 도전에 다름아니다.

당이 최근 파룬궁 단속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그런 맥락이라고 한다.

◇ 갈등의 조율 = 보수파이면서도 현실적인 李위원장이 나섰다.

朱총리 외엔 대안이 없다는 이유다.

부총리 시절인 92년부터 사실상 중국경제의 방향타를 쥔 朱총리는 특히 93년 중국인민은행장을 겸임하며 금융분야에 자신의 인맥들을 확실히 심어놓았다.

이런 처지에 갑작스레 조타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江 - 朱간 감정의 골은 상당히 봉합됐다는 게 중국 정가에 밝은 소식통의 말이다.

그러나 아직 계파간의 조율이 완전한 것은 아니다.

보수파는 단계적으로 朱총리를 조여가고 朱는 이에 대해 초강수로 맞서는 양상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먹구름 가득 찬 베이다이허에 세계의 눈이 쏠리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베이징.홍콩 = 유상철.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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