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평화 큰별 지다…하산 모로코왕 사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친서방 노선을 걸으며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을 막후 중재하는 등 지난 2월 사망한 후세인 요르단 국왕과 함께 중동평화를 위해 활약해온 하산 2세 모로코 국왕이 23일 사망했다.

70세. 하산 2세의 장남인 시디 모하메드 (35) 왕세자는 이날 하산 국왕이 급성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한 직후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모하메드 왕세자는 24일 '모하메드 6세' 로서 모로코 왕위를 계승했다.

하산 2세의 장례식은 25일 수도 라바트의 하산 사원에서 치러졌다.

장례식에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참석, 중동평화를 위한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정상들의 장례식 참석으로 주말에 열릴 예정이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집트 간의 연속 정상회담은 모두 연기됐다.

미 백악관은 지난 23일 성명을 통해 "하산 2세는 위대한 지도자였으며 그의 사망은 모로코뿐만 아니라 중동으로서도 '슬픈 상실' 이 될 것" 이라고 추모했다.

1929년 7월 9일 프랑스와 스페인의 보호령이던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 모하메드 5세의 장남으로 태어난 하산 2세는 프랑스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모로코가 프랑스에서 독립한 1953년부터 2년간의 혼란기에는 부친을 따라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56년 부친이 왕좌에 복귀하면서 왕세자가 된 그는 61년 부친의 사망으로 왕위를 계승했다.

집권 초기에는 좌익과 아랍민족주의자들의 도전으로 정정이 불안해 6개월 이상 왕위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회주의적 경향이 강했던 부친의 정책을 폐기하고 우익 민족주의에 입각해 자신의 정치기반을 구축하는 등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72년 암살미수 사건과 민중봉기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73년 키신저의 방문을 계기로 반식민.반제국주의 운동의 선봉에서 친미 지도자로 변신했다.

미국의 대 중동 교두보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정치적 후원을 얻은 것. 이후 그는 중동평화 조정자로 변신, 77년에는 이스라엘과 이집트간 평화협정을 중재했고 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요르단간 화해에도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70년대 민중봉기를 유혈 진압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모로코 서부에 위치한 스페인령 사하라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정정의 안정을 꾀하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세계 최장수 국가수반 중 하나로 38년간 재위한 그는 정치안정을 토대로 지난해엔 최대 정적을 총리로 임명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정치를 펴왔다.

정현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