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신문고] 상전노릇 지자체에 업자 골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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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안병환 (安秉歡.45.무직.인천시 부평구 산곡동) 씨는 요즘 지방자치단체의 '위력' 을 절감한다.

주차장 사업을 하기 위해 1년여 전 정당한 절차를 거쳐 국방부 땅 9백여평을 빌렸으나 부평구청측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계속 뒷다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와의 협의도 외면하고, 고충처리위원회의 결정은 권고사항일 뿐이라며 뻗대는 구청 탓에 만성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安씨는 생계 꾸려나가기가 막막하다.

그는 지난해 3월 신문에 난 국방부의 토지임대공고를 우연히 봤을 때만 해도 가슴이 부풀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부평동 270의64 등 4필지 9백여평을 3년간 임대한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근에 상가도 있어 불편한 몸이지만 주차장을 운영하면 생계비는 벌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安씨. 그는 5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연 3천만원씩에 3년간의 임차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계약금조로 7백50만원을 내고 주차선과 관리용 컨테이너 등 주차시설을 갖춘 뒤 安씨는 설레는 마음으로 구청에 사업신고를 하러 갔다가 뜻밖의 말을 들었다.

"재정경제부 땅과 섞여 있는 곳이니 정확한 경계를 측량해 오라" 는 것. 한달 뒤 30만원을 들여 측량한 결과 아무 문제가 없었기에 安씨는 다시 서류를 접수시키고 영업준비를 서둘렀다.

하지만 웬걸. 1주일 뒤 날아온 공문은 '불가' 통보였다. '하천부지인 이 땅은 국방부 소유이긴 하지만 시에서 돈을 들여 복개해 구청에서 관리를 맡고 있다. 따라서 하수도 점용 허가를 받아야만 영업할 수 있다' 는 답변이었다.

그 뿐만 아니다. 구청측은 곧바로 철거반을 보내 관리용 컨테이너와 집기 등을 실어가버렸다. 황당해진 安씨는 바로 국방부에 항의했다. 담당자는 "인천시가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복개공사를 한 뒤 기득권을 주장하고 있다" 며 "연간 임차료 가운데 일부를 하수도 점용료로 구청에 내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주겠다" 고 약속했다.

하지만 6월에 날아온 구청 공문 역시 불가통보였다. 화가 치민 安씨가 구청에 항의하자 지역교통과 담당자는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이 땅은 우리가 공용주차장을 운영하기 위해 국방부와 매입절차를 밟고 있다. 꼭 당신만 주차장 사업을 해야 하느냐" 는 엉뚱한 반응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방부 담당자는 지난해 10월 "일단 해약해달라. 구청과 협의해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수의계약을 해주겠다" 고 사정했다. 임차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계약이 해를 넘기면 감사대상이 된다는 것.

어이가 없었지만 安씨는 담당자의 입장을 고려해 이미 낸 임대료를 돌려받고 계약을 해지했다.

올 들어서도 국방부와 구청의 협의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安씨는 지난 3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호소했다. 위원회는 3개월여간의 조사 끝에 "구청의 행정처리가 잘못된 것 같다. 국방부와 재계약해 서류를 가져오면 구청에 시정권고하겠다" 고 답했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었다. 재계약을 위해 국방부를 찾아간 安씨는 또 한번 시달렸다.

"결재를 올렸는데 기각됐다. 근거 없이 해주기는 곤란하니 고충처리위원회에서 공문을 보내주면 해주겠다" 는 것. 安씨는 고충처리위원회를 한번 더 방문한 뒤 지난달에야 국방부로부터 임차 재계약서를 받을 수 있었다.

국방부와의 재계약서와 고충처리위원회의 심판까지 거머쥔 安씨는 지난 13일 관련서류를 구청에 접수시켰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 세번째 불가통보였다.

지역교통과 담당자는 "하수도 점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고 발뺌했고, 하수과에선 "우리가 복개한 곳이니 주차장을 직접 운영해야 한다" 는 말만 되풀이했다.

더 이상 화낼 기력도 없다는 安씨는 요즘 관련 서류를 꼼꼼히 챙기고 있다. 시정명령권을 가진 감사원에 고발하기 위해서다. 安씨의 각오. "정부 부처와의 계약도 무시하는 구청의 어거지를 꼭 바로잡을 겁니다. "

기획취재팀 = 나현철.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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