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 못벗기면 재벌만 즐긴다"-노무라증권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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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 노무라 (野村) 증권이 5대그룹의 구조조정에 대한 내부보고서를 냈다.

노무라는 12일 '한국시장 전략보고서' 를 통해 외국인들 사이에 한국의 구조조정 노력이 경제의 회생 조짐과 함께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 때문에 한국정부는 최근 '여론몰이' 와 '세무조사' 를 통해 재벌을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보고서는 "올들어 5대그룹 소유 증권.투신사들이 시중 자금을 독식하고 있다" 며 "은행의 희생을 발판으로 성장했던 재벌그룹들의 구태를 벗기지 못하면 한국에는 앞으로 가계의 희생을 토대로 재벌만 즐기는 국면이 올지도 모른다" 고 경고했다. 5대그룹에 대한 노무라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한다.

◇ LG=외자유치에 관한 한 상반기중 5대그룹 가운데 가장 큰 실적을 냈다. 하반기에도 약 10억달러 내외의 해외 합작사업을 성사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LG는 '선택과 집중' 이라는 구호 아래 통신과 디지털 사업에 집중하는 것처럼 외국인들 눈에 보였다. 그러나 그런 한편으로 대한생명 인수에도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직도 구태를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SK=그룹측에서는 상반기 구조조정 목표를 초과달성했다고 자체 평가하지만 그렇지 않다. SK는 구조조정 계획의 70% 가량이 3분기에 집중돼 있다. 만일 그룹의 초미 관심사인 SK텔레콤 경영권을 확보할 기회가 주어질 경우 다른 구조조정을 뒤로 미룰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구조조정 사업을 무난히 성공시킬 것으로 보인다.

◇ 삼성 = 상반기에 이미 부채비율을 2백% 아래로 낮췄다. 구조조정에 남은 일이 별로 없다. 다만 삼성자동차 처리가 문제다. 그룹관련 여론악화로 전망이 불투명하지만 구조조정 마무리에 별 다른 돌발악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부터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략적 파트너와의 합작경영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현대 = 현대그룹의 구조조정 노력은 한마디로 유상증자다. 5대핵심 사업으로 그룹을 재편한다고 하지만 과연 5개 업종을 운영할 역량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바이 코리아' 펀드가 현대그룹의 유상증자를 특별히 관리했다고는 믿지않으나 자금이 넉넉한 계열 증권.투신이 편의를 제공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한 현대는 구조조정에 계속 소극적으로 임할 것이다.

◇ 대우 = 상반기중 평가할 만한 점이 있다면 구조조정을 주장해온 전문경영인을 전진배치한 것 뿐이다. 원래부터 대우의 문제는 유동성 부족이며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는 차후의 문제다. 안정적 경영의 선결조건은 98년말 현재 9조원에 달하는 외상매출금 문제 해결이다. 이중 2조원 정도는 상반기중 해결된 것으로 보이고 각종 사업부문 매각을 통해 3조~4조원의 추자 자금조달이 가시화되고 있다. 구조조정의 초점은 대우차에 대한 제너럴모터스 (GM) 의 지분참여 여부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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