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20명 참여연대와 힘모아 사고뭉치 지하철에 경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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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시민에 대한 조그만 배려조차 없이 서비스정신마저 실종된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습니다. " 민주국가에서 시민들은 누구나 국가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또 공무원의 '무사안일' 에 대해서도 나무랄 수 있는 권리도 갖는다.

하지만 숱한 권리침해에도 불구하고 '귀찮다' '해도 소용없다' 는 이유로 자신들의 '권리찾기' 에 적극적인 시민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점에서 지하철사고의 사후처리 소홀에 대해 준엄한 책임을 물은 '참시민' 20명의 용기있는 행동은 작지만 의미가 크다.

지난해 12월 7일 오전 8시쯤 서울지하철 2호선 교대~강남구간. 갑자기 지하철이 멈춰 섰다. 전동차의 비상용 충전기가 방전되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다. 때마침 월요일 출근길이라 지하철 안은 콩나물시루같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조금 뒤 견인차량이 도착했다.

하지만 연결선이 끊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발생, 결국 시민들은 1시간 넘게 컴컴한 터널 속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서울지하철공사측은 승객들의 불안을 덜어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특히 후속열차 10여대에 타고 있던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짐짝'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지연방송만 나올 뿐이었어요. 30분쯤 지나니까 노약자들의 신음소리와 외마디가 잇따랐습니다.유치장이 따로 없었습니다. " 오문환 (吳文煥.32.회사원) 씨는 당시를 회고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평촌 집에서 성남 직장까지 차로는 20분 거리지만 조금이라도 절약하겠노라 세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지하철로 출퇴근하던 吳씨는 그날 땀을 비오듯 흘리며 울분을 삭여야만 했다.

마침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가 빈번한 지하철사고에 대한 재발방지책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손해배상소송을 내기로 하자 吳씨를 비롯한 20명의 승객들이 선뜻 동참했다.

소송에 동참했던 조영화 (曺永和.35.회사원) 씨는 "사고는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사후조치에 조금이라도 신경 썼으면 시민들의 불편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소송 대리는 마침 당시 지하철에 타고 있던 하승수 (河昇秀) 변호사가 맡았다. 지난해 12월 22일 소장을 제출, 지난달 24일 1심에서 "원고에게 10만원씩 지급하라" 는 일부승소 판결을 받았다. 지하철 지연사고와 관련한 첫 승소판결이었다.

河변호사는 "앞으로 지하철 안전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명확히 물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고 말했다.

참여연대 박원석 (朴元錫) 부장은 "당시 2만여명이 1시간 이상 지하철에 갇혀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찾기에 나선 시민은 많지 않았다" 며 "시민들의 감시와 견제만이 사회를 바로잡는 가장 큰 힘" 이라고 강조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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