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고운기 '무소의 뿔처럼… ' 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나는 무리의 자식일 뿐이었다.

학교라는 조직에 들어 넥타이 매고 출근하고,

학회에 가입하고, 문단에 나가고, 동인을 만들고,

게다가 없던 모임마저 새로 만드는 데 동참하고,

나는 거기서 먹이를 얻고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러면서도 귀찮다니, 혼자인 게 좋다니,

떠드는 건 아무래도 얄팍한 뒤집기다.

밥 먹고 식당을 나오며 곰곰 생각한다.

혼자라는 희망은 나에게 분명코 허위였다.

큰 먹이는 여럿이 모아 얻어내고

그 가운데 조금 내 몫 챙겨 돌아서며 안도했었다.

- 고운기 (38)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중

전후 인간에 대한 실존적 모색에서 자주 인간을 고독한 존재, 활자 중 거꾸로 박힌 오자와도 같은 존재로 말했다.

고독은 여고생의 감상이기도 했고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적 개념이기도 했다.

폐허의 코스모스 계절이 더욱 그랬다.

그런 시대를 지나서 지금 다시 '무소의 뿔' 의 은밀한 자아의 단독성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조직에서의 자아란 결코 혼자일 수 없다는 생각이 꽤나 정직하다.

그러나 시이기보다 심정적 술회인가.

고은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