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 속출… 남북관계 대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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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관계가 큰 혼선에 빠졌다.

21일 개막 예정이었던 베이징 (北京) 의 남북 차관급 회담이 북측의 트집으로 연기됐다.

북측은 또 서해 교전사태로 부각된 북방한계선 (NLL) 문제를 한국이 아니라 미국과 논의하겠다는 자세로 나왔다.

이어 남북한 화해.교류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금강산관광까지 브레이크가 걸렸다. 돌출상황의 연속이다.

정부 관계자는 "서해 교전사태 이후 북측이 무언가 시나리오를 갖고 이런 긴장상황을 만드는 것 같다" 고 분석했다.

서해사태 뒤 북측의 이런 강경태도가 처음 드러난 것은 남북 차관급 회담이다.

북측은 "남측이 회담 개막 때까지 비료 2만2천t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제때 이행치 않았다" 며 회담을 연기시켰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날씨 (19일)가 나빠 비료 수송이 지연됐던 점을 물고 늘어져 회담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 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날씨 때문에 비료 수송이 제때 이뤄지기 힘들다는 점과 구체적 출항계획까지 북측에 알렸다고 우리측은 밝혔다.

따라서 북측의 태도엔 치밀한 복선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측은 차관급 회담을 하루 앞두고 대표단 명단조차 내놓지 않는 등 처음부터 신경전을 펼쳤다.

이날 공교롭게 터진 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은 북측의 이같은 거친 자세와 연결된 것으로 우리측은 주목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차관급 회담과 금강산사업의 북측 파트너는 모두 조선아태평화위 소속" 이라며 "그렇지만 북한 체제의 속성상 아태평화위 단독으로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 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는 북한 지도층의 개입과 의도가 표출된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특히 관광객 억류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상징하는 금강산관광에 먹칠을 하자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11월 18일 이후 지금까지 8만6천명이 금강산을 다녀왔지만 북측이 '귀순공작' 운운하면서 관광객을 억류하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현대측도 "한국인 관광객 중 매일 4~5명이 쓰레기를 버리거나 환경훼손 혐의 등으로 적발돼왔다" 며 "그러나 보통 반성문을 쓰고 20~30달러의 벌금만 내면 금방 해결됐다" 고 설명했다.

북측은 앞으로 햇볕정책을 무시하는 대신 대미 (對美) 관계 개선에 열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소식통은 "북측은 23일 베이징의 북.미 고위급회담을 활용해 남북접촉은 북.미 대화의 종속변수라는 기존의 '통미봉남 (通美封南.미국과 통하고 남한을 봉쇄한다)' 전략을 보란 듯이 구사할 것" 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22일 열릴 유엔사와의 장성급회담에서도 유엔사의 중추인 미국을 상대로 서해사태 피해보상과 NLL문제 등을 제기하면서 우리측을 철저히 소외시키려 할 것으로 군 관계자는 예상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직 원론적이다.

21일 밤 긴급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 (NSC) 상임위원회에서는 "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과 차관급 회담 연기는 별개" 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또 북한에 억류된 민영미씨가 귀환할 때까지 관광선 운항을 중지한다는 강경방침을 공표했다.

그렇지만 내부적으로 "이번 사건은 어디까지나 우발적" 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양수.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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