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보선이 정치의 전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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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오는 30일 시행되는 서울 구로을 등 수도권 국회의원 및 시장 재.보선 3개구 선거를 놓고 여야가 벌이는 정치행태는 한마디로 가관이다.

선거를 통해 정권을 차지하는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각 정당이 선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만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그런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여야는 이 3개 재.보선에 엄청난 규모의 인적 (人的).물적 (物的) 지원을 하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두 공동여당은 23, 25, 26일 잇따라 양당 수뇌가 참석한 합동간부회의를 안양.시흥.구로을에서 각기 열었다.

한마디로 총력전이다.

국민회의는 구로을과 안양에서 현역 국회의원 30여명을 동책으로 지명했고, 자민련도 현역의원 10여명을 시흥에 투입하는 등 선거 승리를 위해 사력을 다하는 형국이다.

야당인 한나라당도 25, 26일 안양.시흥에서 수뇌부가 참석한 선거전략회의를 여는 등 마찬가지로 총력전이다.

이 결과 1백여 민생법안 처리를 명분으로 지난 10일 소집된 임시국회는 개점휴업 상태로 25, 26일엔 본회의는 물론 상임위마저 한군데도 열리지 않았다.

임시국회가 지금까지 한 것이라곤 고작 3개 안건을 처리한 정도다.

지금의 나라 상황이 국회를 이처럼 한가롭게 개점휴업 상태로 운영해도 되는 평상시인가.

실업대책을 위시해 국회가 상임위별로 다뤄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런 시기에 여야 수뇌부가 선거현장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소속의원들을 모조리 표밭갈이에 동원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정치행위의 본말전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유세현장에 유권자들은 보이지 않고 정당 수뇌부를 포함한 운동원들만 꽉 차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유권자들의 무관심으로 투표율이 3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자 선거운동의 무게중심이 조직선거로 이동하는 형세다.

이는 필연적으로 돈선거.흑색선전의 우려를 현실화하는 게 아닌가.

더욱이 가장 타기해야 할 지역감정 조장현상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재.보선이 정치의 전부인 양 여기는 여야 수뇌부의 인식 자체가 정치개혁의 대상이다.

우리는 벌써 3개 재.보선에서 불법.혼탁소리가 높고 엄청난 돈을 쓴다는 소리도 듣고 있다.

오늘과 내일은 선거전의 마지막 주말과 일요일이어서 특히 탈법.위법이 자행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은 며칠만이라도 각 정당은 이성을 회복해 더 이상 타락.혼탁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관위와 관계당국도 불법 감시와 단속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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