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개편 뜯어보니]빗나간 '공생',못미친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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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조직 개편이 1년 전 1차 개편에 이어 용두사미의 전철을 밟았다.

축소대상 부처의 반발과 로비에 밀리고 정치논리에 굴복해 정부개혁에 필요한 쟁점 사안들이 대부분 유야무야됐다.

정부개혁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혁신적인 방안들이 대부분 실종되고 현행 체제가 대부분 유지됐다.

그렇다면 왜 공직사회를 반년 가까이 동요와 혼선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는지에 대한 비판의 여론이 높다.

◇ 왜 이렇게 됐나 = 이번 정부조직 개편이 불발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관료사회의 고질적인 이기주의와 공동정부의 한계 때문이다.

기능을 재설계하다 보면 결국 몇몇 부처는 업무영역이 줄어들어 저절로 간

판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축소대상 부처가 총력적으로 반발하고 내각제를 들먹이는 자민련과 국민회의의 공동정부 구도에 따라 정치권이 나서면서 개혁방안은 오간데 없어진 것이다.

전략의 부재도 개혁 후퇴의 요인이 됐다.

기능 재설계를 통해 부처 기능을 조정한 뒤 대통령에게 보고해 최종 결정을 지어야 했을 텐데 처음부터 통폐합에 중점을 두는 바람에 반대세력들의 저항에 너무 쉽게 무너지게 됐다는 얘기다.

여기에 외환위기를 넘겼다는 안일한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인력 감축폭도 17%선에 그쳤다.

이미 지난해 결정된 공기업의 24.8%, 지방정부의 30%, 민간은행의 35%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 또 무산된 개혁과제들 = 우선 산업자원부.과학기술부.정보통신부를 합친 산업기술부의 신설방안과 보건복지부.노동부를 합친 복지노동부로의 개편방안은 백지화됐다.

어업협정에서 난맥상이 드러난 해양수산부 폐지 방안도 없었던 일로 됐다.

막판까지 폐지가 검토되던 과기부가 살아난 것은 정치적 절충과 공직사회의 이기주의가 어우러져 나온 결과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행사처럼 벌어지는 정부조직 개편이 개혁 1차연도에 하지 못하면 결코 할 수 없다는 경험이 새삼 확인됐다.

◇ 새로울 것 없는 기능 조정 = 이미 지난 1차 개편 때 대부분 등장한 것들로 새로울 것이 없다.

몇가지 예를 들면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 정책기능 보강▶특허청.국립의료원의 책임운영 기관화▶철도청과 우정업무의 조속한 민영화 등이다.

공직 운영시스템을 대폭 개선했다지만 개방형 임용제의 경우 이미 지난 1차 개편 때 도입된 개념이며 성과주의 예산이나 총액예산제의 경우도 필요성이 과거부터 있던 내용들이다.

◇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 = 우선 공직사회의 반발을 차단하기 위해 민간에 개편방안을 마련시켰지만 모두 백지화됐다는 점에서 용역비 46억원만 날렸다.

또 상당수 부처들이 '조직 사수' 특별대책반까지 만들어 정계.언론계.관계.청와대에 지연.학연.혈연을 통해 로비를 벌였다.

그만큼 국민의 행정공백이 생기고 세금이 낭비된 것이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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