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환자사례연구회' 나온 암투병 김광우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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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말기 신장암을 앓고 있는 62세 남자입니다. 97년 5월 오른쪽 콩팥에 생긴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으며 암 재발로 98년 5월과 12월 두차례에 걸쳐 췌장.십이지장 일부를 제거하는 재수술을 받았습니다. 현재 수술후 합병증으로 장관누공과 췌장농양이 생겨 입원치료중입니다. "

지난 13일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진단방사선과 집담회실. 주치의의 설명이 나자 휠체어를 탄 환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환자는 이 병원 51병동에 입원중인 김광우 (金光宇) 교수. 서울대병원 부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대한의학회장으로 중환자관리를 개척한 마취과학의 권위자다.

그러나 이번엔 의사가 아닌 환자, 그것도 학술적으로 가치있는 특이한 예를 지닌 환자로 후학들 앞에 섰다.

다른 암환자들은 대개 한차례 수술을 받는데 비해 金교수는 지금까지 모두 세차례나 수술을 받은데다가 수술후 복부 X선 사진을 찍은 결과 대장에 구멍이 뚫리고 췌장에 농양이 생긴 보기 드문 합병증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학술집담회란 환자가 의사들의 질문에 따라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고 이를 통해 전문.전공의들이 주치의가 적용한 처치법의 잘잘못을 따져 앞으로 같은 경우의 환자가 생겼을 때 바른 처치법을 찾기 위한 과정. 하지만 스승을 공부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곤혹스러움 때문에 아무도 참석을 권유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원로 교수가 적지 않았지만 학생과 전공의가 참여하는 학술토론회에 환자로 참여한 전례도 없었다.

번거롭고 병세가 악화될 수 있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金교수가 직접 나섰다.

후학교육을 위해서다.

金교수가 합병증으로 앓고 있는 장관누공은 장과 피부 사이에 구멍이 뚫려 음식물이 바깥으로 새어나오는 증세. 그는 모인 의사들을 향해 일갈했다.

"왜 의사가 환자 곁에 있길 게을리 하는가. " 자신의 합병증이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형식적인 회진만 할뿐 환자의 상태를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을 게을리한 탓임을 매섭게 지적했다.

"내가 이러니 다른 환자들은 오죽하겠느냐" 고 질책하던 노스승은 "여러분들은 검사결과에만 의존하지 말고 환자 곁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친절한 의사가 돼달라" 며 말을 맺었다.

숙연하던 집담회장은 金교수가 "무대 위에서 사라져가는 선배의 잔소리로 이해해달라" 며 휠체어를 움직이자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제자도 스승도 함께 울었다.

집담회에 참석했던 전공의 K씨는 "죽음을 눈앞에 둔 노스승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며 "환자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고 말했다.

뒤늦게 집담회 소식을 건네 들은 서울대 병원의 의료진도 '환자 적극 돌보기' 를 다짐하고 나섰다.

金교수는 현재 장관누공이 완치된 상태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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