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수업'하나…정기국회 허송한뒤 임시국회 또 소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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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야가 정쟁으로 정기국회 1백일을 허송한 뒤 다시 임시국회를 열기로 했다. '게으른 사람 석양에 바쁜' 격이다.

회기는 여야 합의 (여당 10일, 야당 30일) 로 내년 1월 7일까지 20일간이다.

올 국회는 정기국회까지만 치더라도 총 12회 소집됐다. 96년 3회, 97년 5회와 비교해 외형상 많은 일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건처리 실적으로 보면 올해는 15일 현재 1백43건으로 96년의 1백72건, 97년의 3백5건에 비해서도 턱없이 적다.

정권교체 첫해인 98년 국회는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여야가 임시국회 개회에 합의한 것은 6백여건에 이르는 안건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규제공화국' 의 오명을 씻겠다며 1만1천개 행정규제의 50%를 풀겠다는 야심적인 규제개혁 법안들을 제출했으나 국회는 다른 정치쟁점 때문에 이를 제대로 심의하지 못했다.

특히 14일 한나라당이 제출한 천용택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이 여당의 본회의 불참으로 자동폐기되면서 야당이 정기국회 잔여일정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어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국회 과반의석을 확보해 더이상 책임을 미룰 수 없게 된 여당의 몸이 바짝 달아오르게 된 것이다.

여당 원내 사령탑에 대한 여권 핵심의 질책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도 개혁법안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을 혼자 뒤집어쓰기 어려웠다.

이회창 (李會昌) 총재가 "철저하고 심도있는 법안처리" 를 명분으로 직접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외우내환에 시달리는 李총재로선 국회같은 대여 (對與) 투쟁의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비주류 등 내부의 이질적인 목소리를 눌러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듯하다.

또 세풍사건과 관련해 자신이 검찰조사를 받게 되거나, 안기부의 총풍수사 고문 개연성이 드러나면 대대적인 반격을 하기 위해서라도 국회가 열려있어야 한다는 판단을 야당 지도부가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소속 의원들을 검찰구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고려가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여야가 이런 비난여론을 의식, 15일 3당 총무회담에서 규제개혁 관련법안을 올 연말까지 모두 처리키로 합의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같은 복잡한 정치계산이 작용해 열리게 되는 국회인 만큼 연말 임시국회가 순항할지는 극히 불투명하다.

이밖에 국회 처리과정에서 개혁성이 후퇴된 법안에 대해선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게 김종필 국무총리의 생각이어서 경우에 따라선 국회와 행정부 사이의 갈등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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