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내식구' 감싸는 감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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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감사원 직원이 건설업자로부터 2백만원을 받은 사실이 적발돼 지난 3일 의원면직당했다.

하지만 '의원면직' 이란 감사원의 결정을 두고 공무원 사이에 말이 많다.

과연 형평성이 있는 조치냐는 의문이다.

대형 국책건설공사에 대한 감사를 담당하는 부감사관 (5급) 신성복 (申成福) 씨는 지난 11월 6일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에 감사를 나갔다가 감사현장 부근 아이스크림가게에서 N건설 金모사장으로부터 2백만원을 받고 나오다 서울시 암행감찰반에 붙잡혔다.

申씨를 넘겨받은 감사원은 자체 조사결과 '액수가 적고 업무와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 는 이유로 징계를 하지 않았다.

대신 '감사원의 품위를 손상했다' 는 이유로 申씨가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다.

'의원면직' 이란 스스로 물러난다는 의미로 엄격히 말해 징계가 아니다.

불명예스럽게 강제로 물러나는 파면.해임과 달리 퇴직금도 정상적으로 받는다.

공무원들이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은 최근 정부의 부정부패척결 방침이나 거듭된 의지천명과 감사원의 결정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1월 25일 김종필 (金鍾泌)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갖고 '돈을 받는 것은 액수의 과다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한다' 고 밝혔다.

실제로 이같은 방침에 따라 돈을 받은 공무원들은 검찰에 고발돼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물론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파면.해임 등의 중징계를 받고 있다.

따라서 감사원이 밝힌 '액수가 적고' 는 설득력이 전혀 없는 얘기다.

'업무와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 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감사원은 돈을 준 金모사장이 申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고향후배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대가성이 없어 뇌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며 광범위한 의미의 '떡값' 도 받지 못하게 단속하고 있다.

엄격히 하자면 대가성이 있는지 여부도 제3의 기관인 수사당국의 확인절차를 거치는 게 정당한 처리였을 것이다.

대통령은 '하늘이 무너져도 부정부패는 척결하겠다' 는 강한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막상 부정부패 척결의 중책을 맡은 감사원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내 식구' 라고 봐줄 게 아니라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중징계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오병상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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