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T 보고서,'대기업 빅딜 정부 개입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대기업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민간과 관변 연구기관의 대리전(代理戰)이 점차 가열되고 있다.

지난달 말 6개 민간연구기관이 합동으로 정부 정책을 비판하자 이달초 6개 관변연구기관이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고, 이번에는 역시 관변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KIET)이 대기업 빅딜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는 재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빅딜 무용론' 과 정부개입 반대에 대해 정부를 대신해 반박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경영주체 선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주목된다. KIET는 그동안 관변연구기관 가운데 비교적 재계 입장을 많이 이해해온 곳이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정부편에 선 셈이다.

KIET는 26일 '주요 장치산업의 과당경쟁 문제와 대기업 빅딜의 논리' 라는 보고서에서 주요 산업의 과잉설비와 과당경쟁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정부가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주요 산업의 과잉규모가 재계에만 맡겨놓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데다 ▶정부가 개입해도 부작용이 적고 ▶과잉의 폐해가 너무 심각하다는 점을 들었다.

◇ 과잉설비 얼마나 심각한가 = 자동차.석유화학.발전설비.철도차량.반도체 등 빅딜대상 주요 산업의 생산능력이 수요의 두배에 이른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97년기준 생산능력이 4백19만대인 반면 내수와 수출을 합친 수요는 절반 수준인 2백7만대에 그치고 있다.

석유화학은 넘치는 생산량을 수출로 해소하고 있으나 채산성을 고려한 수출이라기보다는 밀어내기식 수출의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반도체는 세계적으로 적게는 19%, 많게는 40% 정도의 공급과잉 상태라며, 다른 산업과 달리 재고를 쌓아둘 수 없어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철도차량은 공급이 세배나 많은 상태로 주요업체 가동률이 30~40%에 머무르고 있다고 밝혔다.

◇ 재계 주장에 대한 반박 = 그동안 재계가 빅딜에 대해 문제를 삼은 것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현재의 과잉설비나 과당경쟁은 일시적 경기침체로 벌어진 것으로, 경기가 회복되면 조기에 줄어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KIET는 전세계적으로 과잉설비가 너무 많고, 산업 자체의 발전속도가 점점 둔화되고 있어 경기가 회복돼도 과잉설비를 해소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경기회복을 소극적으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빅딜을 통해 과잉설비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민경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는 주요 산업에 동시적으로 대규모 과잉설비가 발생했고, 현 상황이 위기상황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KIET는 강조했다.

재계의 두번째 주장은 과잉설비나 과당경쟁을 해결할 필요가 있더라도 정부가 개입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부가 기업정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오판할 수 있는 데다 개입하기 시작하면 기업에 일종의 도덕적 해이(解弛)가 발생해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KIET는 기업의 자율적 협상에 맡겨놓으면 정부가 개입했을 때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되레 크다고 반박했다. 다만 구체적인 퇴출기업 선정과 같은 세부문제는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현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