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감독 소리있는 '춘향뎐'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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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10대 남녀가 대담하게 주고받은 사랑, 흉폭한 권력앞에서 목숨을 걸고 지킨 정절, 계급갈등과 꿈같은 신분상승…. 과연 어떤 요소가 지금까지 많은 영화감독들을 '춘향전' 에 빠져들게 한 걸까. 93년 남도 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 '서편제' 로 국내 최다 관객동원 기록을 세웠던 임권택 (62) 감독이 열세번째 '춘향전' (가제 '춘향뎐' ) 을 준비하느라 요즘 분주하다.

시나리오는 '서편제' 에서 주연을 맡았던 김명곤 (46) 씨, 제작사는 역시 '서편제' 를 비롯 '씨받이' '아제아제바라아제' '창' 등 줄곧 임감독의 작품을 만들어온 태흥영화사 (대표 이태원)가 맡았다.

12월에 신인배우들을 공모해 주역인 춘향과 이몽룡역의 배우들을 캐스팅한 뒤 본격 촬영은 내년 봄 들어간다는 것. 임감독이 '춘향전' 을 계획한 것은 93년 '서편제' 를 준비하면서부터. 당시 명창 조상현의 소리로 '춘향가' 완창을 처음 들었다는 임감독은 "그때 준비하던 '서편제' 를 포기해버릴까하는 생각에 사로잡힐만큼 소리가 주는 감동이 한마디로 큰 충격" 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작업에 착수하려다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아 '10년 후' 정도로 막연히 미루어오다 "최근 부쩍 내마음에 '춘향전' 이 밀고 들어왔다" 는 것이 그의 설명. 그러나 임감독이 '춘향전' 을 만들려는 계획에 대해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이 적잖은 것도 사실이다.

이전에 나왔던 '춘향전' 과는 다른 새로운 요소를 표현해내고 요즘 관객의 공감을 얻어내기엔 원작 자체에 한계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임감독 스스로도 그런 우려를 더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 그의 영화 '창' 에 대해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표한 마당이라 부담이 여느때보다 무겁다.

"이번 작품이 내게 '모험' 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는 임감독은 "소설과 영화로 수없이 소개됐지만 정작 '소리' 를 갖고 만들어진 '춘향전' 은 없었다는 점에서 큰 용기를 얻었다" 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그는 " '춘향가' 의 내용을 원형 그대로 살림으로써 나의 특별한 해석을 강조하기보다는 현대인들이 각자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 고 덧붙엿다.

영화는 소리꾼과 고수가 현대 관객들에게 '춘향가' 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펼쳐지게 될 듯. 소리와 영화가 같은 박자로 맞물려 가도록 한다는 게 임감독의 구상이다.

한편 배우들은 원작에 가장 근접하게 10대 신인배우들이 기용될 예정이다.

임감독이 신작에 착수한다는 소문이 돌자 이미 영화사엔 젊은 배우들과 매니저들의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는 후문. 그동안 '장군의 아들' '서편제' 등을 통해 신인배우들을 발굴해온 임감독의 남다른 역량에 대한 기대를 엿보게하는 대목이다 제작자인 이태원사장은 "세계무대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며 "제작비의 규모 (약 30억원)가 큰 만큼 투자자들을 모아볼 생각도 있다" 고 포부를 밝혔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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