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노벨상과 '모범생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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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과학기자에게 10월은 잔인한 계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벨상은 미국의 독무대로 끝났기 때문이다.

일본과 중국은 물론 인도와 파키스탄도 이미 과학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우리는 왜 기대조차 할 수 없는 것일까. 지난해 강연차 내한한 뢰브딘 前스웨덴 왕립 노벨상 심사위원장은 "노벨상은 3등까지만 인정한다" 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예컨대 단일주제에 대해선 아무리 독창적이고 훌륭한 연구업적이라도 공동수상의 기회는 3명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산화질소의 역할을 규명한 올해 노벨의학상이 대표적 사례다.

혈관확장인자의 존재를 밝힌 파흐곳교수와 그것이 산화질소임을 이론적으로 규명한 이그나로교수, 그리고 니트로글리세린을 통해 실험적으로 산화질소의 존재를 입증한 무라드교수가 바로 그들이다.

즉 무라드교수 이후로 산화질소에 관해 제 아무리 훌륭한 연구논문을 발표해도 노벨상은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3등까지 인정하는 노벨상의 정신은 '누가 먼저' 라는 창의성으로 요약된다.

측우기와 거북선을 발명한 우리의 창의성을 되살리려면 우선 길들이기 교육부터 타파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은 생래적으로 모범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미 밝혀진 사실을 확인하는 시험에서 1등은 의미가 없다.

입시 모범생들의 집합소인 도쿄대보다 창의적 교육을 중시하는 쿄토대에 노벨상 수상자가 더욱 많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비오는 날 밤 모유명종합병원 한 스태프가 인턴에게 인근 호텔에 세워진 제 차의 창문이 열려 있다며 닫고 오라고 심부름을 보낸 사실이 알려져 얼마전 인턴들이 집단파업을 벌이기까지 했을 정도다.

사정은 일반 이공계 대학도 마찬가지다.

빗나간 도제의식은 창의적 연구능력보다 원만한 인격을 가장한 충성심부터 강요하기 일쑤다.

이 때문에 고분고분한 사람만 살아남고 자기 사람 심기에 급급한 근친교배가 국가 경쟁력을 좀먹고 있다.

연구자를 길들이려 해선 안된다.

연구자는 오직 논문으로 말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위대한 과학자이지 박애주의를 실천한 인격자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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