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 제주에 가보니…"지방이전 혜택 있는지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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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에 근무하는 다음 직원들이 휴식시간에 족구를 하고 있다. [다음 제공]

▶ 3월 이재웅 사장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제주도로 가는 까닭'.(전문보기)

국내 1위 인터넷 업체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서울 테헤란로를 떠나 제주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지 넉달이 흘렀다. 쾌적한 환경에서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떠난다는 것이었다(본지 3월 18일자 E1면). 600여명의 직원 중 이미 3개팀 70여명이 제주로 옮겼고, 임시사옥이 지어지는 내년에는 100명 이상이 추가로 간다. 이 회사는 2006년 3월까지 본사의 완전한 이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1등 기업의 지방 이전이라는 전례없는 '실험' 현장을 취재했다. [편집자]

#지난달 30일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뜨거운 태양 아래 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 속에 다음의 마케팅 연구소(NIL)가 자리해 있다. 펜션을 개조해 만든 사무실에 들어서니 반바지 차림의 직원 20여명이 분주히 움직인다. 첨단 화상대화 시스템으로 서울 본사와 미팅하고, 일부는 무선 랜이 작동되는 건물 앞 잔디밭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린다. 휴식시간이 되자 족구를 하거나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도 눈에 띈다. 맑은 공기, 쾌적한 환경…. 천국이 따로 없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제주시 중심부인 노형동에 자리잡은 미래전략본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15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다음의 제주 이전작업을 총괄하는 부서다. 김경달 본부장은 "수도권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게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하소연했다. 무엇보다 현실과 맞지 않는 법.제도가 발목을 잡는다. 대표적인 게 법인세 감면. 현행 법에 따르면 본사를 지방으로 옮기는 기업에는 '5년간 100%' 법인세를 깎아준다. 하지만 다음에는 빛좋은 개살구다. 예컨대 100억원의 법인세를 낸다고 할 때 전 직원 중 몇%가 옮겼는지 따져 이전비율을 곱하고, 여기에 월급비율을 다시 곱한다. 이렇게 되면 실제 감면액은 100억원이 아니라 20억~30억원으로 줄어든다. 공장 이전과 달리 일정 인력의 서울 잔류가 불가피한 인터넷 기업의 특성은 반영될 여지가 없다.

지방 이전 기업에는 땅값의 50%를 정부가 지원해 주는 '용지 매입 보상' 제도도 있다. 그러나 넓은 땅이 필요한 공장 이전엔 큰 도움이 되지만, 좁은 땅에 높은 빌딩을 지을 다음에는 도움이 안 된다. 건축비나 시설비에 대한 지원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런 문제를 담은 건의서를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보냈지만 '수용 불가' 회신을 받았다. 이재웅 사장은 "지원한다는 말은 있지만 정말 지원이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이라면서 "고용 창출 효과가 크고 환경 문제도 없는 지식기업에도 공장 이전 못지않은 혜택이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삶의 질' 문제는 좀더 복잡하다. 20~30대가 대부분인 이곳 직원들은 "참 살기 좋은 곳"이라면서도 "평생 살 곳으로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낯선 풍습 앞에서의 당혹감, 비주류로 전락한 것 같은 상실감, 앞으로 겪게 될 자녀 교육문제, 부족한 의료.문화 시설 등 서울에 살 땐 생각도 못했던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4월 선발대로 내려온 NIL팀은 처음부터 예기치 못한 문제에 부닥쳤다. 숙소를 구하기 위해 부동산 소개소를 찾아다녔지만 매물이 없었던 것. 1월 초에만 집중적으로 이사가 이루어지는 제주 고유의 풍습 때문이었다. 결국 회사가 나서서 시가보다 비싸게 원룸.아파트 등을 가까스로 구했다.

맞벌이 부부들의 고민도 크다. NIL 손경완(34)팀장은 "아내가 다닐 만한 직장을 여기선 구할 수 없어 주말부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임형철.박한영씨 같은 제주 체류 사내 커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또 친구.친척들은 대부분 서울 등 육지에 있기 때문에 이들을 만나려면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이 때문에 회사 측은 직원과 가족들에게 17만원 상당의 왕복 항공권을 1만원에 무제한 구입할 수 있는 지원을 하고 있다. NIL 사무실은 저녁만 되면 적막에 휩싸인다. 교통편도 마땅치 않아 차가 없는 직원들은 천상 차를 모는 동료와 동행해야 한다. NIL팀의 석태미(26.여)씨는 "한가로운 생활이 좋다. 하지만 밤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으면 '갑자기 아프면 어쩌나' '결혼 상대는 어디서 찾나'하는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메신저.e-메일 등으로 대부분 이루어지고 있는 업무 처리는 큰 지장이 없다. 반면 화상 대화는 아직은 어색하다. 손경완 팀장은 "서울보다 정보나 최신 흐름에서 뒤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음 관계자는 "제도나 분위기가 형성되면 가지, 왜 앞장서서 고생하느냐는 충고가 많다"면서 "지방에 교육.의료.문화시설이 대폭 확충되지 않으면 진정한 지방분권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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