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의 수녀 영어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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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30일 오전 10시 대전시 유성구 세동 마을회관. 어린이 20여 명이 마을회관 공부방에 설치된 칠판에 적힌 단어를 읽고 있다. 강사는 이 마을 수녀원에서 생활하는 김 데레시아(김성자·70) 수녀이다.

김 데레이사 수녀가 마을회관에서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김성태 프리랜서]


데레시아 수녀는 5년 전부터 이 지역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두 시간씩 문법과 회화·글짓기 등 영어 전반을 가르친다. 현재 수강생은 초·중학생 35명이다.

그가 영어 강의에 나선 것은 지역에 교육혜택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이 많은 것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대전시와 충남 계룡시 경계에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80여 가구 주민들은 대부분 채소를 가꾸거나 벼농사로 생계를 잇고 있다. 마을의 상당수 어린이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갈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나마 학원에 가려면 20분 이상 버스를 타고나가야 한다. 그는 “공부하고 싶어도 기회가 적은 농촌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순간이 늘 행복하다”고 말했다.

전북 전주 출신인 데레시아 수녀는 1962년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영어교사로 임용됐다. 전주 금영여고와 광주 살레시오여고 등에서 15년간 영어교사로 일하다 79년 수녀가 됐다. 그를 비롯한 가족 대부분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데레시아 수녀는 애초 마을회관 주변에 사는 어린이 5∼6명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그러나 이곳에서 영어를 배운 학생들의 실력이 향상됐다는 소문이 나면서 학생들이 갈수록 늘었다. 인근마을에서 그의 강의를 들으러 버스를 타고 오는 학생도 상당수이다. 영어를 배우는 김선영(12)양은 “다정하게 대해주시는 수녀님과 영어를 배우는 시간이 즐겁다”며 활짝 웃었다.

김씨를 도와 학습을 지도하려는 자원봉사자도 나섰다. 학부모와 KAIST대학원생 등 4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수학·한문 등을 하루 한 시간씩 지도한다.

자원봉사 교사로 나선 주부 배수경(39)씨는 “수녀님이 혼자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모른 채 할 수 없어 참여했다”며 “애들 학습지도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데레시아 수녀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청소년들을 가르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사진=김성태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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