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쌀값 급등 … 개방해도 충격 적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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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시장 조기 개방을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외국 쌀과 국산 쌀의 가격 차가 좁혀지면서 시장을 열더라도 국내 쌀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 6월 전남 담양군 수북 농협 창고에서 관리인이 벼를 점검하는 모습. 수북 농협 미곡종합처리장의 벼 재고량은 6만여 포로 지난해보다 50%가량 늘었다. [중앙포토]

“쌀 시장 조기 개방 문제는 민감하다는 이유로 아무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러던 것을 논의를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주목할 만한 점이다.”

27일 열린 농어업선진화 추진 방안 설명회에서 강원대 김경량(농업자원경제학) 교수는 이렇게 평가했다. 실제로 그동안 쌀 시장 조기 개방은 거론 자체가 금물이었다. ‘개방하면 농업의 근간인 쌀농사가 죽는다’는 목소리에 개방의 득실을 따져 보려는 시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들어 일부 농민단체들이 “조기 개방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정부도 쌀 시장 조기 개방 공론화에 나선 것이다.

◆도화선은 국제 쌀값 급등=2000년대 초반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와 쌀 협상을 하면서 개방 절대 불가를 고수했다. 당시 국내 쌀값이 미국산의 세 배가 넘어, 시장을 개방하면 쌀 농가가 큰 피해를 볼 것이란 걱정 때문이었다. 개방을 미루는 대신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일정량의 외국 쌀을 의무 수입하기로 절충했다. 2004년 20만5000t에서 시작해 매년 약 2만t씩 늘려 올해 30만7000t, 2014년엔 40만9000t을 관세 5%를 붙여 들여오기로 했다. 그 뒤에는 쌀 개방 문제를 재협상한다는 게 지금까지의 원칙이다.

그런데 2007년 들어 중국 등 신흥 경제국의 식량 수요가 늘어나면서 국제 쌀값이 치솟기 시작했다. 2006년 t당 500달러를 오르내리던 미국 캘리포이나산 쌀(중립종) 수출 단가는 지난해 7월 이후 줄곧 1100달러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원화가치가 떨어지면서 국산 쌀과 외국 쌀의 가격 차가 더욱 줄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 들어 쌀값은 국산이 외산보다 30% 정도 비싼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을 개방하고 대신 수입 쌀에 적절한 관세를 붙이면 가격 면에서 국산 쌀이 밀릴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농민단체에서도 쌀 시장 개방 검토 주장이 나왔다. 가격 경쟁력이 생긴 만큼 개방을 해도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의무 수입을 고수하는 게 매년 수입량을 늘려야 한다는 점에서 농업인들에게 불리하다는 판단이다.

◆엇갈리는 농민단체 입장=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임병희 관리부장은 “보호 장치만 충분하면 바로 쌀 시장을 개방하는 게 농업인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쌀 시장 개방의 전제로 정부가 다른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쌀은 예외로 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쌀 시장을 개방(관세화)한 뒤에 FTA를 하면서 관세를 없애면 결국 국내 쌀 농가가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다. 임 부장은 “그 밖에 쌀과 관련한 반덤핑 조사를 철저히 하겠다는 등의 정부 약속이 있으면 쌀 시장 조기 개방은 반길 일”이라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반대다. 전농은 최근 발표한 성명서에서 “국제 곡물시장 가격과 환율이 하루하루 변하고 있어 쌀 개방은 그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며 “농업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쌀 시장 개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고려대 한두봉(식품자원경제학) 교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중심으로 식량 수요가 계속 늘 전망이어서 앞으로 국제 쌀값이 큰 폭으로 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부 농민단체의 반발과 정치적 파장을 생각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당초 빨리 개방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판단에 따라 내년 개방을 추진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으나, 농어업선진화위원회 산하 쌀 특별위원회의 결정에 따르는 것으로 한발 물러섰다. 쌀 특위에는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가톨릭농민회 등 농민단체 대표와 소비자시민모임·국립식량과학원·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27일 낸 보도자료에서 “특위가 이달 13일과 24일 두 차례 모였으며, 국제 쌀값이 지금 수준이라면 관세화(개방)를 앞당기는 게 유리하다는 공감대가 마련됐다”고 전했다.

권혁주·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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