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햇볕과 강풍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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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골목길에서 세 아이가 전쟁놀이를 하고 있다.

덩치가 월등히 큰 미국이라는 아이가 골목대장이다.

미국은 힘도 세거니와 이 골목뿐 아니라 마을 전체를 폐허로 만들 수 있는 무서운 무기를 가졌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보호 아래 이 골목에서 그럭저럭 행세를 한다.

북한이라는 아이가 그들의 놀이를 방해한다.

북한은 옷차림이 남루하고 얼굴에 핏기가 없다.

세 아이는 선물공세로 북한을 달래왔지만 북한은 하나를 주면 둘을 요구한다.

북한은 특히 한국을 노린다.

그러나 번번이 미국의 위세에 눌려 한국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특히 근래에는 한국의 힘이 갑자기 커져 오히려 북한이 위협을 느낄 때가 많다.

세 아이는 북한을 놀이에 끌어들이려고 하지만 북한은 그들의 게임 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 아이들 보기에 북한은 둘도 없는 악동 (惡童) 이다.

어느날 이 악동이 손에 이상한 쇠붙이를 들고 나타났다.

분명히 장난감 같은데 북한은 그게 무서운 최신무기라고 주장하면서 강자 (强者) 대우를 요구한다.

한국과 일본은 웃기지 말라고 일소에 부치지만 그들중 유일하게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안목을 가진 미국은 북한이 가진 것이 골목 하나쯤 파괴할 괴력을 가진 무기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판정을 내린다.

반신반의 (半信半疑) 하던 한국과 일본이 새파랗게 질린다.

일본은 급하면 제 골목으로 사라지면 그만이다.

그러나 골목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은 다른 두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다.

미국에 기대어 살면서도 기회만 있으면 북한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던 일본도 이번에는 협조하는 자세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세 아이는 딜레마에 빠진다.

악동은 더 이상 무기를 안 만들고, 지금 가진 무기도 사용하지 않는 대가로 많은 돈과 함께 골목의 한 자락을 떼어달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이 북한이 가진 것과 같은 무기를 만들려고 해도 시간이 없다.

거기다가 골목대장의 자리를 놓칠까 걱정인 미국의 반대를 꺾을 수도 없다.

가진 것이 많은 미국은 더 많은 선물로 북한을 회유하는 미소작전으로 나올 게 확실하다.

한국도 그랬다.

북한이 입고 있는 갑옷을 벗기려고 강풍 (强風) 을 날려봤지만 북한은 그때마다 갑옷 자락을 더 단단히 여미기만 했다.

그래서 미국의 권유를 받아들여 햇볕을 비추는 작전으로 방법을 바꿨다.

사람들은 거기에 햇볕정책이라는 큰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북한은 갑옷 밑에 첨단무기를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알고 보니 북한이 힘도 없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주제에 허세만 부리는 약자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현실 앞에 섰다.

한국은 북한이 무서운 힘을 기르고 있는걸 전혀 알지 못했다.

집안 형편이 갑자기 좋아져 우물안 개구리처럼 교만해진 탓도 있다.

이제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골목길의 힘의 균형과 안전을 지키는가.

햇볕정책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다시 강풍을 보내야 하는가.

강풍이나 햇볕 어느 한쪽만으로는 해답이 못된다.

세 아이는 목소리를 합해 북한이 그 무기를 실제로 사용하지 않고, 무기 끝에 핵 (核) 이라는 독침을 매달지 못하게 막는 것이 급선무다.

다른 골목의 중국과 러시아의 힘도 빌려야 한다.

미국은 한국이 혼자 힘으로도 북한과 대적 (對敵)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무장 (武裝) 을 갖추도록 도와야 한다.

북한이 한국과 장사는 계속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다행이다.

북한은 미국에서 돈과 기술.기름을 얻어야 살림을 꾸릴 수 있다.

공식으로 북한 총대장의 자리를 굳힌 '지도자 동무' 도 보다 나은 살림을 약속하지 않았는가.

북한은 어제의 북한이 아니다.

미사일 능력을 믿고 자만할 수도 있고 여유를 찾을 수도 있다.

북한을 다루는 태도가 유연해야 하는 이유다.

당근만으로는 부족할 것이고, 그렇다고 아주 채찍으로 돌아가는 것도 모험이기 때문이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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