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고고학 탐험]3.끝 올로게세일리에 유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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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구석기 시대에도 '유행' 이 있었을까. 이것은 구석기 고고학자들에게 오랜 기간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수수께끼가 되어 온 질문이다.

동아프리카의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최초로 발견된 프랑스 아슐 지역에서 유래된 이름) 유적들을 방문하였을 때 나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은 내가 구석기 문화내용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동아시아 고고학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도구를 사용한게 아니다.

최초의 인류는 이미 5백만년 전에 나타났고 석기가 발견된 것은 대략 2백50만년 전이다.

애초의 석기들은 대단히 불규칙하게 만들어졌으나 1백50만년 전쯤 되면 누가 보아도 사람이 만든 것 같은 것들을 남기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직립원인 (直立原人) , 즉 '호모 에렉투스' 들의 아슐리안 주먹도끼들이다.

이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대개 길이가 우리의 손바닥 만하며 전체를 다듬어서 타원형으로 만든 것이 보통이고 끝이 뾰족한 것들이 많다.

원래 아시아에서는 발견되지 않아서 오랜동안 유럽.아프리카의 아슐리안 구석기 문화전통과 비교해 동아시아 지역의 구석기 문화전통을 '찍개문화' 전통이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1978년 우리나라 연천군 전곡리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돼 세계 구석기학계를 놀라게 하였다.

더우기 20년 가까이 전곡리 유적을 발굴해온 나로서는 '아슐리안 주먹도끼' 라고 하면 선승 (禪僧) 의 화두 (話頭) 처럼 머리속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숙제였다.

동아프리카는 가장 오래된 아슐리안 문화 그리고 가장 풍부한 주먹도끼가 있는 지역이다.

동아프리카 탐사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은 동양과 서양, 즉 유럽과 아프리카의 주먹도끼가 어떻게 다른가, 왜 다른가에 대한 해답을 얻는 일이었다.

아니 해답보다도 그럴듯한 설명을 끌어내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을 따라 탄자니아의 다르 살람을 떠나 육로로 나이로비에 도착하자마자 케냐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Y박사와 이집트 고고학을 하는 프랑스인 약혼자를 앞세워 올로게세일리에 유적에 갔다.

나이로비를 떠나 남쪽으로 가면 '아웃 오브 아프리카' 의 원래 모델인 칼렌 브릭슨의 꿈과 사랑이 서린 은공 (Ngong) 언덕을 넘게 되고 그 아래에는 아득히 리프트 밸리가 펼쳐지며 이곳에 올로게세일리에 유적이 있다.

바분 (원숭이의 일종) 들이 뛰어 노는 길을 따라 리프트 밸리의 바닥으로 내려가면 나무들 사이로 원형의 마사이 마을이 시간이 정지된 풍경처럼 눈에 들어온다.

리프트 밸리는 동아프리카의 어디에서나 이방인들로 하여금 석기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한다.

반경 약 5백m내에 몇 개의 지점을 발굴하였는데 그 지점들이 모두 발굴상태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여기서 나를 경악하게 한 것은 유적의 바닥에 깔려 있는 거의 모든 석기들이 아슐리안 주먹도끼들인 것이다.

듣기도 하고 책에서 읽기도 하였지만 육안으로 보았을 때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내가 발굴한 전곡리 유적에서는 한번 발굴에 한 두 점 발견될까 말까인데 이토록 흔하다니. 모양도 비슷비슷하여 수공품이지만 고도의 정형성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 당시 사람들의 기술뿐 아니라 그들이 좋아하는 모양, 즉 유행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런 생각은 나중에 탄자니아의 이시밀라 유적에서 한 골짜기에 깔린 모든 돌들이 석기이며 그 태반이 주먹도끼인 것을 보고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실제로 주먹도끼가 갖는 기능은 큼직하고 납작한 돌조각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상당한 시간을 소모해가면서 이런 석기들을 만드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직립원인들에게도 분명 우리와 같은 감성의 패턴이 있었던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도구이자 예술품이라고 주장하는 고고학자도 있다.

그런데 왜 동아시아에서는 이런 유적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동아시아 직립원인이 비교적 발달된 단계이고 석기재료도 동아프리카와 비슷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도 분명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푸는 숙제가 우리 고고학자들에게 남아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배기동 <한양대 교수.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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