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 중심으로 거듭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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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톡탁 톡탁 -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지하에서 탁구공 튀기는 소리다.

점심시간을 알뜰히 활용해 탁구를 치며 건강도 챙기고 직원들 간의 단합도 도모하는데 나무랄 이유는 아무데도 없다.

다만 한가해 보인다는 인상 만은 사실이다. 지난해 겨울까지만 해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각 지자체 견학팀을 맞는라 분주했다.

각 지자체가 도.시민들의 문화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미술관 건립이 필수적이라고 꼽고 그 조직과 운영을 배우려 국립현대미술관에 몰렸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첫 관심은 국립현대미술관 조직과 기구표. 그렇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의 모든 것을 눈여겨보려는 이들에게는 직원들의 탁구놀이 광경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미술계는 올들어 심한 무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구조조정.퇴출.실직같은 절박한 단어들 앞에서 '미술에 대해서 관심을…' 이란 말은 일언반구도 꺼내기 어려운 사회분위기 때문이다.

이런 무력증 가운데 '지금이야말로' 라고 하는 미술계 이슈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구조조정 방향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한 때 몸담았던 전직 직원은 물론 미술계 인사 상당수가 '왜곡돼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기구와 조직을 바로 잡을 기회는 지금뿐' 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조직은 관장 아래에 1국3과1실. 모두 85명이 일하고 있다. 기구표로 보면 관리.전시.섭외교육과를 사무국장이 관할하고 학예연구실은 별도다.

말하자면 미술관 활동은 사무국 중심으로 이뤄지며 학예연구실은 자문기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도록 돼있다.

실제 학예연구실 업무는 연구와 기획에 그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미술관 활동은 어느 나라를 봐도 학예연구실이 중심이다.

소위 큐레이터 (학예원) 라 불리는 미술전문인들이 연구에서부터 전시기획.실행.홍보는 물론 모자라는 예산까지 발로 뛰면서 챙겨 넣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나미술연구소 최열 기획실장은 "이번 구조조정이 단순히 인원감축에만 그친다면 하나마나 할 것" 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학예실 중심의 구조개선이 아니면 공연히 일할 사람만 줄이는 결과가 되리란 우려다.

지금으로 봐선 사진.보존.표구.자료담당 등 꼭 필요하지만 별정직으로 돼있는 자리가 줄 공산이 크기 때문. 한때 과천의 학예원이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이인범씨는 "문제는 과천에만 그치지 않을 정도로 시급하다" 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과천의 기구표를 착실히 베낀 광주.대전.부산 등 시립미술관이 학예실을 제쳐놓고 이미 수십명의 사무국 중심조직을 만들어 삐걱거리는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 미술계 인사들이 말하는 바람직한 구조개선내용은 사무국을 없애라는 데 있다.

그리고 전시.섭외교육과는 학예연구실로 편입시키면 따로 놀던 연구.기획과 전시.홍보업무 통합은 물론 일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어쨌든 조만간 구조조정 이후의 국립현대미술관의 새 모습이 밝혀질 예정이다.

그때가 되면 국립현대미술관 구조조정에 거는 미술인들의 바람과 실망 사이의 차이도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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