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오부치내각 국제책임 다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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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총리의 새 내각이 출범한 이후 엔화가 계속 약세를 보임에 따라 수렁에 빠진 아시아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회복이 위협을 받고 있다.

엔화가 달러당 1백45엔대까지 가치가 폭락하고 이대로 가면 마지노선이라는 1백50엔까지 예고되고 있다.

지난해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경제의 침몰원인중 하나로 지적돼 온 엔화의 절하는 이번에 또다시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를 불러올지도 모를 불행한 전조 (前兆) 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오부치 내각은 출범 직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에서 일본의 당면한 부실채권 정리를 포함한 금융개혁을 추진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평가됐다.

일본 국내에서도 여론 지지도가 30%내외로 드러나 내외에서 협공을 당하는 형세다.

이같은 예상에 부응이라도 하듯 오부치 내각의 미야자와 기이치 (宮澤喜一) 대장상은 "엔화와 주가는 시장에 맡겨놓는 것이 좋다" 고 발언함으로써 일본정부가 엔화약세에 개입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일부에서는 미야자와 대장상의 발언이 시장, 특히 미국의 월가를 상대로 힘을 시험중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일본 내부에서는 월가의 투기자본이 미야자와의 원칙적인 발언을 침소봉대 (針小棒大) 해서 일본을 의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 국내의 정책결정에 외국이 내정간섭을 해서도 안되고 타국의 이익을 위해 일본 이익이 희생돼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현재와 같은 일본 엔화의 약세는 근본적으로 일본 경제가 지속적인 개혁의지를 보여 금융시장을 정상화시키지 않고는 개선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속적인 엔화약세를 방기하는 것은 책임있는 경제대국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어 여러가지 정책선택이 있을 수 있는데 일본경기의 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에 맡긴다는 원칙을 앞세워 해야 할 개혁을 늦추고 엔화약세의 주름살을 여타 아시아경제에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경제는 급속히 통합되고 있기 때문에 한 나라의 환율이 즉각 다른 나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지역 전체의 공동번영을 위해서는 나라간의 정책협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일본 국내경기의 회복이 한국을 비롯한 전체 아시아경제의 회복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만큼 오부치 내각은 단기적인 일본의 이익만 보지 말고 대승적 (大乘的) 인 자세로 개혁에 임하기를 기대한다.

일관성 있는 개혁만이 월가의 공격을 막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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