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영 기자의 장수 브랜드] 한샘 부엌가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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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전통 주택의 부엌에서는 아궁이에 장작 또는 연탄으로 불을 때서 요리를 했다. 음식을 차려 상에 올린 뒤 다시 신발을 신고 나가 안방으로 들고 가야 했다. 건축설계사로 집을 설계하던 조창걸 한샘 회장은 1960년대 말부터 아파트가 늘면서 아궁이가 없어져 부엌 높이가 다른 주거공간과 같아지기 시작한 것에 착안했다. 부엌이 안 보이던 곳에서 거실 옆으로 옮겨 오게 되면 사람들이 부엌에도 인테리어 개념을 찾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이 시장을 노리고 70년 부엌가구 회사 한샘을 만들었다. 커다란 연못 속에서 샘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솟아 나온다는 의미로 이렇게 지었다. 당시 부엌가구라는 개념은 따로 없고 스테인리스로 된 싱크대를 만드는 업체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싱크대를 사고, 부엌장은 동네 목공소에 따로 의뢰해 짜 넣었다. 한샘은 이를 개수대-가열대-배선대 등으로 일하는 순서에 따라 설계해 한꺼번에 짜 주었다. 이른바 ‘블록 키친’이었다.

초기엔 작업자 50여 명에 공장이라고 해봤자 텐트형과 양철 막사의 간이형 목공소였다. 모든 작업은 톱으로 썰고, 사포로 미는 수작업으로 했다. 지금처럼 반짝이고 광택이 나는 ‘하이글로시’ 제품은 아예 없었고, 거칠거칠한 나무 표면에 페인트칠을 한 게 다였다. 하지만 동네 목공소와 달리 실측을 한 뒤 제대로 된 설계도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작업한다는 점이 달랐다.

한샘 최양하 부회장은 “아파트 입주민들을 공략하기 위해 서울 명동에 있었던 시대백화점 건너편에 부엌만을 지은 ‘모델하우스’를 선보이고 입주자 명단을 구해 일일이 우편물을 돌렸다”고 회고했다. 70년대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구반포 아파트 주민들이 대거 입주하면서 물량이 크게 달렸다. 입주 후 몇 달 동안 부엌가구가 안 들어와 밥을 못해 먹는 상황이 발생하자 회사에서 입주민들에게 임시로 중고 싱크를 몇 달간 빌려 주기도 했다. ‘블록 키친’은 이후 도마장·쌀통장·행주걸이장 같은 특이한 수납장이 들어 있는 ‘시스템 키친’, 그리고 모든 주방기기가 안 보이게 가구 안으로 쏙 들어간 ‘빌트인’ 부엌으로 진화했다. 한샘은 97년부터 부엌가구를 넘어 종합 인테리어로, 요즘엔 종합 건자재로 발을 넓히고 있다. 86년 이후부터 부엌가구 시장점유율 1위, 2001년 이후부터 인테리어 가구 1위를 지키고 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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