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철의 증시레이더]외국인 몸사리기 약세 지속될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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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주가가 결국 방향을 아래쪽으로 잡은 것 같다. 18일의 325.49를 고비로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종합주가지수는 마침내 26일 298.54로 내려 앉았다.

9일만에 다시 300선이 무너진 것이다.

토요일의 3.36포인트 상승은 거래량이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큰 의미가 없다.

300선의 붕괴 자체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이로서 당분간 "종합지수 200대" 를 벗어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길 법하다.

엔화는 불과 1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약세로 반전했다. 더욱이 아시아위기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파급될지 모른다는 우려는 로버트 루빈 장관을 포함한 재무부 관리들을 제외한 대부분 미국인들의 관심권 밖이다.

한가지 다행스런 일은 이번 클린턴대통령의 중국 방문중 위안화의 평가절하가 가까운 장래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한 사실이다.

중국이 당면한 수출감소를 위안화 절하로 풀 경우 예상되는 무역전쟁과 그것이 초래할 동남아경제의 파국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시나리오다. 골칫거리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투자가들이 서둘러 한국주식을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현지에서 확인한 미국투자가들의 생각은 국내에서 듣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첫째 환율이 1천3백원대에 있고서는 투자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달러당 1천5백원~1천6백원이 적정환율이라고 믿는 이들은 주식이나 채권에서 이익이 생겨도 환율이 올라가면 헛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둘째 구조조정은 말만 많고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55개 기업퇴출' 은 모양만 냈다는 평가이고 '부실은행 정리' 는 우량은행까지 멍들게 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큰 은행들은 모두 정리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불가피하다' 는 정부개입에도 노골적인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최근 외국인들이 은행주를 무차별적으로 팔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한국정부는 구조조정과 사회안정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에 꽤 많은 액수를 투자하고 있는 뉴욕소재 한 뮤추얼펀드는 지난 주에 3분기 투자전략회의를 가졌다. 장시간 토론 끝에 한국이 몰락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주가가 떨어질 만큼 떨어져 추가하락할 위험이 작기 때문에 돈 벌 찬스가 있다는데 펀드매니저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나 "지금 사야 하는가" 하는 질문엔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는 것이다.

결국 뿌연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카고에서 권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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