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비틀거리는 하시모토 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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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주요국들의 정치가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야간에 상대방 흠집내기에 골몰하는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다.

일본은 하시모토 총리 정권이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거듭하고 있다.

얼마전 진통끝에 최연소인 키리옌코 총리가 취임한 러시아도 정국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필리핀은 오는 11일 대선을 앞두고 초긴장 상태. 각국의 정국상황을 살펴본다.

일본의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정권은 비틀거리면서도 계속 달리고 있는 자전거에 비유할 수 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지만 전문가들 사이에는 적어도 올해말까지는 무난히 유지될 것이라는 견해가 의외로 많다.

최근 지지 (時事) 통신 여론조사에서 '총리에 바람직한 인물' 로 하시모토를 꼽은 사람은 6.5%에 불과했고 간 나오토 (菅直人) 민주당대표는 20.4%의 지지를 받았다.

민주당.공산당 등 야당들은 경제실패 책임을 물어 곧 내각불신임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연립정권을 구성하던 사민당도 연정탈퇴 방침을 굳혔다.

인기도나 당내 지지면에서 형편없는데도 하시모토 정권이 명맥을 유지하는 데 대해 정치평론가 이마이 히사오 (今井久夫) 는 "정당지지도와 내각지지도의 괴리, 그리고 자민당의 황금분할에 가까운 세력판도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위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민당내 비당권파의 공세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만장일치가 전통이던 자민당 총무회의에서 가메이 시즈카 (龜井靜香) 전 건설상.가지야마 세이로쿠 (梶山靜六) 전 관방장관 등은 요즘 반대의사를 공공연히 표시하고 있다.

물론 하시모토 총리를 뒷받침해온 야마사키 다쿠 (山崎拓) 정조회장.가토 고이치 (加藤紘一) 간사장.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 후생성상 등 이른바 YKK라인의 지지는 아직 흔들리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현재로선 총리퇴진이 바람직하지 않다" 고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대안이 없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만일 가메이나 가지야마 등 비당권파에 권력이 넘어갈 경우 자유당과의 보수대연합을 추진, 자민당이 분열될 우려도 높다.

또 60세 전후의 YKK는 차기보다 '차차 (次次) 기' 가 관심이다. 이들은 사석에서 "당분간은 경기부양책.재정적자 삭감 등 인기없는 정책만 쌓여 있다" 며 "하시모토 내각이 이런 것들을 모두 정리하고 난 뒤에야…" 라며 당장 하시모토 총리를 흔들지 않는 진짜 이유를 내비치고 있다.

하시모토 정권의 앞길은 가시밭길이다. 7월 중순 참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은 68석을 넘겨야 참의원 과반수의석 확보가 가능한데 만약 현재의 의석 (61석) 보다 줄어들 경우 정권유지에는 치명적이다.

잇따른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풀리지 않는 경기도 정권유지에 부담이 되고 있다.

자민당 내부에서는 닛케이 평균주가지수 1만4천엔을 '정권붕괴 라인' 으로 잡고있다 (현재 1만5천6백엔대) .또 엔화가치가 달러당 1백40엔 이하로 떨어져도 정권의 운명은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다 (현재 1백33엔대) .가이드라인 관련법 개정을 둘러싸고 사민당이 연정에서 떨어져 나가고, 자칫 자민당 단독정권마저 붕괴될 경우 일본 정국은 또 한차례 대지진에 휩싸이게 된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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