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 가득 넘치는 봄…한국화가 오용길씨 5년만에 개인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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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눈을 뜨면 봄이 보인다.

차가운 겨울 바람에 지쳐 몸을 움추린채 아직도 눈을 꽉 감고 있지만 봄은 어느덧 눈앞에 놓여 있다.

고단한 삶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 봄은 왔으되 아무도 봄을 말하지 않는 우울한 이 시절에 봄을 일깨워주는 사람이 있다.

봄이 왔다고, 아무 조건없이 나에게 주어진 이 봄을 마음껏 즐겨보라고, 조용히 소리치는 사람. 바로 실경산수의 전통을 잇고 있는 한국화가 오용길 (52.이화여대 동양화과) 교수다.

틈틈이 여러 그룹전에 출품하기는 했지만 개인전은 미뤄오던 오교수가 25일부터 4월 4일까지 선화랑에서 5년만에 개인전을 갖는다.

02 - 734 - 0458. 이번 전시는 후진양성을 잠시 접어두고 1년동안 작업에만 열중한 결과를 보여준다.

길이 5m가 넘는 대작 '산운 (山韻)' 을 비롯한 20여점의 출품작들은 지금까지 발표해온 작품들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기법이나 자연을 다루는 소재 면에서 이전과 다른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번 전시는 그가 그토록 몰두했던 주제, 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화면 한가득 흐드러지게 활짝 핀 노란 산수유가 자리잡고 서있는 그의 작업 '봄의 기운 (氣韻)' 은 이름대로 생동감 넘치는 봄기운을 전해준다.

저 뒤로 보이는 북한산을 배경으로 벚꽃과 산수유가 어우러진 '북한산의 봄' 은 우리 주변으로 눈을 돌려 봄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준다.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눈길만 한번 돌리면 만날 수 있는 봄을 편안하게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오교수의 실경산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서도 현실을 잊게 만드는 고향같은 묘한 매력을 풍기면서 사람들을 봄 속으로 끌어들인다.

오교수는 '동양화 6대가' 로 일컬어지던 이상범.변관식.허백련.노수현.김은호.박승무가 70년대 잇따라 세상을 떠나면서 젊은 한국화가들 사이에 일었던 실경산수화 제작 붐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73년에 국전 문공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에도 선미술상 (85년) 과 월전미술상 (91년) 을 잇따라 수상하면서 한국화단의 선두주자 대열에 계속 머물러 왔다.

최근 개인전은 없었지만 꾸준한 작업활동을 통해 의재 허백련 예술상 (95년) 과 이당 미술상 (97년) 을 수상하기도 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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