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킹이 배출한 ‘한국판 폴 포츠’ 김태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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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일반인의 성공담은 늘 우리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영국 iTV의 스타 발굴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출연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폴 포츠의 이야기도 그렇다. 휴대전화 외판원이었던 그는 방송에서 오페라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완벽하게 불러 오페라 가수의 꿈을 이뤘다.

우리에게도 그런 스타가 있다. 지난해 6월 수족관 기사인 김태희(36·사진)씨는 SBS ‘스타킹’ 무대에서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렀다. 꼭 1년 전 영국의 폴 포츠가 부른 그 노래다. 그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자 전문 성악가들이 술렁였다. 서툰 이탈리아어 발음으로 더듬더듬 부른 노래인데도 그 음악성에 탄성이 절로 터졌다. 그에겐 ‘한국의 폴 포츠’란 별칭이 붙었다.

김씨는 어릴 적부터 성악가가 꿈이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수족관 일을 하면서도 노래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도, 집에서도 발성 연습을 했다. 단 한 차례도 성악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전문가 못지 않은 발성이 가능한 건 그런 꾸준한 연습 덕분이다. 김씨는 그의 노래를 들은 이웃의 제보로 얼떨결에 스타킹 무대에 올랐다.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출연이지만 스타킹은 꿈을 이뤄준 소중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방송 출연 이후 그는 말 그대로 ‘스타’가 됐다. KTF 광고에 출연했고, 방송 섭외가 줄을 이었다. 각종 음악회의 초청도 쇄도했다. 그의 오랜 꿈이었던 오페라 무대에도 오른다.

26~3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오페라 ‘라보엠’에서 장난감 가게 주인 파르피뇰 역을 맡았다. “저를 제외하면 출연진 대다수가 음대 교수님들이예요. 순수 아마추어로서 이런 큰 무대에 함께 서다니 믿기지 않아요.”

그는 7월 첫 싱글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음악회 출연료가 수백만원에 이를 정도로 스타성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수족관 일을 한다. 스케줄이 비는 날엔 고객들이 맡긴 수족관 청소를 한다. “갑자기 유명해지니까 제가 변할까봐 겁이 나더라구요. 꿈을 이룬 데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노래를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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