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연체 분담금 안내면 투표권 뺏는다" 미국에 으름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유엔 사무국이 오랫동안 속을 썩여온 미국의 연체 분담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부지게 팔을 걷어붙였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뉴욕 타임스지에 연체금 납부를 호소하는 기고문을 띄운 데 이어 11일 낮 (현지시간) 워싱턴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조속한 납부를 요청했다.

조지프 코너 사무차장 (행정.관리담당) 은 10일 브리핑을 통해 미국이 연체 분담금을 계속 지불하지 않을 경우 유엔 헌장에 따라 유엔 총회에서의 투표권을 박탈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최강국의 투표권이 상실되는 '황당한' 사태가 실제로 벌어질리야 없겠지만 어쨌든 유엔으로서는 전례 없이 강력한 메시지였다.

유엔의 재정형편이 그만큼 다급하다는 얘기다.

유엔이 발표한 미국의 의무분담금 (정규예산+평화유지활동예산) 연체액은 약 13억달러. 그러나 미국은 약 10억2천만달러라고 주장한다.

양측의 이같은 차이는 미국에 부과되는 평화유지활동 (PKO) 예산 추가부담분을 미국이 인정하지 않는데다 PKO 예산 정산절차에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엔 회원국들의 연체 분담금 총액은 80여개국으로부터 약 24억달러에 이른다.

미국 외에 러시아 (2억5천만달러).우크라이나 (1억달러)가 많은 편이고, 나머지는 그 규모가 크지 않다.

연체 분담금 때문에 유엔은 정규예산의 경우 2월말 현재 2억7천여만달러의 적자를 기록중이다.

정규예산 부족분은 PKO 예산 (분담금을 먼저 거둬놓고 사후정산 형식으로 집행)에서 차입하는 형식으로 변통한다.

말하자면 예산전용인 셈이다.

이 때문에 PKO 활동에 참여하는 나라들은 지출한 경비를 제때 환급받지 못하는 수가 많다.

미국 (특히 미 의회) 은 지난 95년부터 유엔의 행.재정적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한 분담금을 낼 수 없다며 버텨왔다.

미국은 당시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이 이끌던 유엔이 세계최강 미국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힘도 없으면서 머릿수만 많은' 제3세계 국가의 이익 위주로 운영된다는 불만을 품어왔다.

최근에는 연체금 납부를 정규예산 분담률 (25%) 을 20%로 낮추는 문제와 연계시키기도 했다.

아난 총장은 97년1월 자신이 취임한 이후 유엔 정규예산 (98~99년 25억3천여만달러) 을 이전에 비해 약 1억달러 줄였고, 직원 (9천여명) 도 1천명 감축하는 등 개혁이 활기차게 진행중임을 강조했다.

뉴욕 = 김동균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