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책임 안진다" 청와대 발언에 옷안벗은 은행장들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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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은행인사 불개입 원칙을 천명했던 청와대가 지난 2일 시중.지방은행의 주총결과에 대해 불만섞인 코멘트를 내놓으면서 은행가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과연 어느 은행 때문에 박지원 (朴智元) 청와대 대변인이 "책임을 지지 않는 은행장" 의 문제를 거론했느냐는 것부터가 관심거리다.

청와대나 국민회의에서 나온 지적들은 일부 문제은행의 사례를 든 것이지, 은행전체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김원길 (金元吉) 국민회의 정책위의장은 지방은행 한곳과 지방에 본점을 둔 중소기업 전담 후발은행 한곳을 거명하면서 "책임질 사람이 그대로 올라갔다는 항의를 받고 있다" 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것이 은행권 전체에 대한 집권여당의 비판으로 확대해석되고 있어 은행들도 은근히 불만이다.

우선 은행장들이 모두 책임을 회피한 채 자리보전에만 급급해하는 기득권층으로 몰리는 데 대해 불편해하고 있다.

특히 상업.국민.평화은행처럼 행장이 물러난 것이 획일적인 '모범답안' 처럼 제시되는 것도 무리라는 것. 부실화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경영실권을 행사해보지도 못한 행장들에게까지 무조건 물러나라는 무언의 압력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제일.서울은행은 이미 부실화된 이후 경영정상화를 위해 새로 행장이 기용됐다.

외환은행장도 재임기간이 7개월밖에 안돼 경영책임을 묻는 것이 난센스일 정도. 다만 이번 주총을 계기로 주인이 없는 은행에서 은행장의 경영책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는 문제는 다각도로 제기되고 있다.

관련규정에 따르면 자기자본비율이 낮아 경영개선명령을 받은 14개 은행의 경우 자구계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경우 은감원이 부실책임을 물어 경영진의 해임을 권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적어도 1년정도 자구노력 이행성과를 지켜본 뒤의 얘기다.

은감원 고위 관계자는 "과거의 부실화에 대한 책임소재보다 제시된 자구목표를 달성하는 지 여부에 주목하겠다" 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은감원은 임원의 임기와 관계없이 1년 단위로 경영책임을 묻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특히 14개 은행의 경우 분기별로 정상화계획 이행상황을 점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따질 예정이어서 이미 임원문책의 근거를 갖춘 상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주주가 부실경영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 은감원의 솔직한 설명이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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