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영화제 주목받는 경쟁부문 출품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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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베를린 영화제 25편의 경쟁부문 출품작 가운데 눈이 번쩍 뜨일 만큼의 특출한 작품은 찾기 힘들지만 작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특히, 구스 반 산트 감독의 '굿 윌 헌팅' 을 비롯, 코엔 형제의 '빅 르보우스키' , 닐 조단 감독의 '푸줏간 소년' 등 뛰어난 영미권 영화들이 눈에 뛴다.

비할리우드권에서는 브라질 감독인 월트 살레스가 출품한 '중앙역' 이 수상권에 상당히 근접했다는 평이다.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중앙역' 은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에서 엔딩 타이틀이 내려온 후에도 한동안 많은 관객들이 자리를 뜨지 않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 영화를 본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 작품을 올해 부산영화제에 초청할 생각" 이라고 밝혔다.

이 영화는 문맹자들을 위해 편지를 대신 써주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전직 교사인 초로의 여인이, 교통사고로 졸지에 어머니를 여읜 소년을 위해 아버지를 찾아주러 나서게 되면서 겪는 따뜻한 인간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특히 아홉살 먹은 꼬마역을 한 배우의 연기가 빼어나다.

살레스 감독은 "1, 500명을 면접했으나 적당한 소년을 찾지 못했다.

그런 어느날 리오 공항에서 구두닦이 소년이 나에게 다가왔다.

햄버거 하나만 사먹게 돈을 달라는 거였다.

그를 보는 순간 '바로 이 아이다' 라고 직감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소년이 나를 선택한 것 같다" 며 다소 극적으로 얘기했다.

일본은 오바야시 노부키오 감독의 '사다' 를 경쟁부문에 내놓고 있다.

1936년 아베 사다라는 여인이 애인을 교살한 뒤 거세시킨, 일본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이 소재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70년대에 같은 소재로 '감각의 제국' 을 만들어 칸에서 수상한 적이 있어, 이 영화는 리메이크인 셈이다.

'사다' 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즉 성애와 죽음의 상관관계라는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감각의 제국' 보다는 중후하고 심각한 맛이 떨어진다.

그 대신 곳곳에 오바야시 감독 특유의 영화적인 재기와 기민함이 깔려 있어 '시각적인 재미' 가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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