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잇단 협조융자 문제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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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시절 부실기업에 긴급자금을 은행에서 지원하는 구제금융이라는 편법이 협조융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대기업그룹에 계속해 나가고 있다.

이는 일시적인 자금난인지 혹은 부실규모만 늘리는 것인지 하는 판단여하에 따라 은행이 결정해야 할 문제지만 겉으로 나타난 은행의 자율결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금융개혁과 기업구조조정의 와중에 '대마불사 (大馬不死)' 가 다시 고개를 든 것이 아니냐는 점에서 원칙을 재삼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대기업그룹이 계속 파산한다면 그 충격이 너무 커 우리 경제는 회복되기도 전에 주저앉을지 모른다.

그같은 위험성 때문에 은행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협조융자를 케이스별로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혹은 정치권이 개입해 어느 기업은 구제하고 다른 경우에는 안해주는 식으로 결정하면 금융개혁이나 기업의 구조조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따라서 이 문제는 과연 협조융자로 문제가 된 대기업이 회생할 수 있을지 여부를 모든 각도에서 채권은행단이 합리적으로 검토하고 그 결과가 공개되는 것이 우선과제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은행과 기업간의 개별거래든 혹은 협조거래든 거래당사자가 책임을 지고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이같은 기준에서 보면 정치적 고려에 의한 협조융자 개입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옳다.

만약 관련기업의 회생이 확실하다고 여겨져 일시적인 협조융자가 불가피한 경우라도 적용금리.담보제공 여부와 같은 지원에 따른 조건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경기악화로 수많은 중소기업이 은행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못받아 쓰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는 대기업그룹에 대한 협조융자가 남발된다면 누구라도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사후에 은행부실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협조융자를 둘러싼 의사결정은 공개되는 것이 마땅하고 어디까지나 주거래은행과 부거래은행단간의 논의과정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래야 사후에 책임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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