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경제파탄 수습 '산넘어 산'…민간기업·은행 이미 "지급불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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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인도네시아 유력지인 자카르타 포스트의 빈센트 링가 경제담당 국장은 “정부가 3월10일 대선때까지 모라토리엄 (지불유예) 조치를 취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고 말했다.

차기 대선도 제대로 치르기 힘들 만큼 엄청난 파문을 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부터는 어느 누구도 점치기 힘들다.

자카르타의 한국계 은행들은 “인도네시아의 민간기업과 금융기관이 채무 불이행에 빠진 지는 오래됐다” 고 전했다.

통화위기 전에 비해 환율이 4배이상 올라 외채 상환 능력을 상실, 일부 한국 기업들은 달러 대신 루피아로 채권을 상환받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기업 부도 (不渡)가 제도화 돼 있지 않다.

때문에 채권 기관들은 전체 외채의 55%인 6백50억달러에 달하는 민간 채무의 경우 만기가 돌아와도 할 수 없이 만기 연장을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하르토 대통령 일가의 족벌 체제와 독점.부패 등 인도네시아 경제파탄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외환위기 해결의 열쇠는 화교계 기업인들이 쥐고 있다.

2억 인구의 3%에 불과한 화교계가 경제 전체의 60%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급한 불은 수입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폭등이다.

인도네시아는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쌀을 비롯, 더운 날씨에 음식물을 요리하기 위한 식용유, 취사에 필요한 등유와 설탕을 국제가격보다 싼 가격에 공급해 왔다.

등유에만 매년 10조 루피아의 정부보조금이 지불됐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 (IMF) 이 재정 건전화를 이유로 보조금을 폐지, 미얀마에서 수입하는 쌀의 경우 ㎏당 2천5백루피아에서 5천루피아로 두 배나 올랐다.

IMF가 쌀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독점체제를 폐지한 것도 유통질서를 일시에 무너뜨렸다.

인도네시아 통화위기가 장기화되면서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을 안기고 있다.

한국은 지난 96년 인도네시아와 72억달러의 교역을 해왔으나 올들어 교역실적은 절반 가까이로 줄어들었다.

또 건설업체들도 15억달러에 가까운 건설공사를 포기하고 본국으로 철수하고 있다.

더 심각한 타격은 한국 금융기관.기업들이 홍콩 현지법인을 통해 무분별하게 매입한 수십억달러의 인도네시아 채권이다.

싱가포르의 한국계 외환딜러는 “외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런 부실채권이 문제” 라며 “신용도 하락으로 현지 금융이 막힌 해외 법인들이 만기가 돌아온 상환금을 서울 시장에서 외화로 조달해 갚고, 받아야 할 채권은 돌려받지 못해 원화가치 안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고 지적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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