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유학 정보’ 선배에게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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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필수 ‘영작 오리엔테이션’ 외엔 어떤 수업 듣든 자유

미국 대학에 대해 조사하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리버럴 아츠 칼리지(LAC: Liberal Arts College)라는 단어다. LAC는 아이비리그로 대표되는 대형 종합대학과 다르게 전교생이 2000여 명으로, 대학원 과정 없이 학부에 집중하는 시스템을 가진 대학이다.

대표적인 LAC가 애머스트대다. 애머스트에는 코어 커리큘럼이라고 불리는 필수 과목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입생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영작 오리엔테이션 하나를 제외하고는 수업 선택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각 전공필수 수업에 대한 조건 또한 매우 유연하다. 전공 이외의 다양한 지식을 쌓기 위한 기회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다. 경제학을 예로 들면, 4년 동안 들어야 하는 경제 관련 수업의 수는 9개뿐이다. 이런 유연한 정책 덕분에 애머스트에 재학 중인 반 이상의 학생은 이중 전공, 일부는 심지어 삼중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하고 있다.

필자는 경제 전공이지만 연극과 무용에 관심을 가지면서 연극 수업을 들었다. 2학년부터는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일본의 역사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궁금해서 일본 역사도 수강했다. 2학년 2학기에는 독학으로 배운 피아노를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음악 이론 수업을 듣기도 했다. 수강한 클래스의 3분의 2가 경제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이렇듯 수업 선택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는 환경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새로운 특기, 열정, 나아가 인생의 길을 발견한다. 우수하지만 진로를 정하지 못한 학생에게 LAC는 최적의 환경이다. 학생에게 주어지는 학문적 자유를 통해 LAC는 ‘완성된 지식인’을 만들어 가려 하는 것이다.



한인 학생회 활동으로 캠퍼스에 한국 문화 알리고, 학교 생활 배우고

컬럼비아대는 매년 약 2200명의 학생이 입학 허가를 받는다. 이 가운데 한국 유학생은 20~30명 정도다. 한국 유학생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캠퍼스에는 한국인 교포도 상당수 있다. 우리 학교엔 한인 유학생과 교포가 모여서 만든 한인 학생회(KSA: Korean Students Association)가 있다.

KSA에서 주최하는 모든 행사는 캠퍼스 내 한국 문화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려는 데 목적이 있다. 학생회는 추석·설 등 명절에 학교 주변 한식당과 연계해 캠퍼스에서 한국 명절 음식을 싸게 팔기도 하고, 겨울에는 한국식 포장마차를 캠퍼스에 선보인다. 컬처쇼라고 불리는 한국 문화제는 태권도·풍물·한복·한국 음악 등을 보여주는 기회다. 대강당에서 열리는데 1000명 이상이 찾는다.

가을 학기 초엔 ‘Date Action’이라는 행사가 열린다. 학생회 운영진과 일일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권리가 경매에 오른다. 그 과정이 마치 소더비 예술품 경매를 보는 듯하다. 지난해 이 경매로 1000달러에 달하는 펀드가 조성됐다. 이 돈은 뉴욕의 한 병원 연구센터에 기부됐다.

지난해엔 가족사(GajoKSA)라는 이름의 멘토링 프로그램도 시작됐다. 1, 2학년 학생 두 명과 3, 4학년 학생 두 명을 묶어 가족을 구성하고 멘토, 멘티가 된다. 매달 모든 가족이 모여 게임을 하거나 식사를 한다.

KSA 운영진은 보통 선거와 면접을 통해 선발된다. 한 해 2만 달러가 넘는 예산을 가지고 다양한 행사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운영진이 되는 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캠퍼스에 한국을 알리고 학교 생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한인 학생회에 참여하는 일일 것이다.



늦잠 자 망친 그룹 프로젝트, 책임감 중요함 깨달아

집단 행동 분석(Organization Behavior)이라는 수업에서 그룹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세 사람이 한 그룹이 되어 조사하고 그 내용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발표하는 프로젝트였다. 오전 9시 시작되는 수업이었는데, 프레젠테이션 발표 당일 잠에서 깨어 보니 9시5분이었다. 허겁지겁 씻고 단추를 채우며 강의실로 달려간 기억이 난다.

다행히 발표 시간에는 늦지 않았다. 문제는 전날 밤 늦게까지 준비하다 잠들어 버려 완성하지 못한 발표용 슬라이드였다. 지난번 그룹 미팅 때 슬라이드의 양이 많은데도 나누기 귀찮아 혼자 다 하겠다고 약속해 버린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그룹이 발표한 뒤 평가 시간이 왔다. 다른 학생들은 우리의 발표용 슬라이드의 수준이 낮고, 오타도 많았다며 지적하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강의실 앞으로 다시 나가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다. “슬라이드 준비는 내 담당이었고, 내가 어제 늦게까지 작업하다 잠들어 준비가 미흡했다”고 말이다. 모든 것이 필자의 잘못이니 다른 구성원에게 나쁜 평가를 주지 말아 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일부 학생은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고 수군댔고, 일부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당황스러웠던 것은 내가 속한 그룹의 학생들 반응이었다. 그룹 프로젝트의 의미가 협동을 통해 전체가 평가받는 것인데 내가 나서 봐야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점수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나머지가 모두 잘해도 한 사람이 주어진 역할을 하지 못하면 다 같이 무너지는 그룹 프로젝트에서 특히 책임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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