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우리 사회 성숙도 보여 준 줄기세포 연구 승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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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차병원이 신청한 인간 체세포 핵이식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조건부 승인 결정을 환영한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가 지나온 어둡고 기나긴 터널을 생각하면 힘든 결정이었음에 틀림없다. 다행히 한 단계 성숙한 합의를 바탕으로 이 같은 결과를 도출해 자랑스럽다.

줄기세포 연구는 미래 의학의 꽃, 차세대 신성장동력 산업 등의 화려한 미사여구로 장식돼 왔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발생과 난치병을 연구할 수 있는 기초 연구 모델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태생적으로 생명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배아를 희생시켜야만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배아나 태아는 인간의 발생학과 난치성 유전질환을 직접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다. 하지만 인간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지적과 함께 의학적·법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연구 자원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동안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한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실제 다국적 거대 제약기업은 실험동물을 이용해 신약 후보물질의 유효성 및 안전성 시험을 진행했다.

그러나 어느 저명한 과학자가 얘기했듯 우리의 최종 목표는 인류 복지 증진을 위한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연구다. 마우스·초파리·개구리와 같은 실험동물이 연구의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인체에서 뽑아온 연구자원의 남용과 오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실험동물을 이용한 연구가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으나, 동물과 인간은 생명과학적 관점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동물에서의 치료 효과가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도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인간의 배아줄기세포는 연구 목적으로 접근이 불가한 인간 초기 발생 과정을 실험실에서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다시 말해 연구를 위해 남용될 수도 있는 인간 배아나 태아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줄기세포 관련 연구의 제1목적은 인체에서 가져온 줄기세포를 활용해 뇌·간·심장 등의 모델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가지고 신약 시험을 실시하는 것이다.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는 다국적 거대 기업들은 신약 후보물질이 효과가 있는지, 안전성은 어떤지의 시험을 기존의 실험용 동물 대신 이런 방법을 택해 실시해 왔다. 이렇게 하면 동물에서는 효과가 있으나 인간에는 독이 되거나, 반대로 동물에서는 약효가 없으나 인간에게는 효과가 있는 신약을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그 가치는 그야말로 무궁할 것이다. 실험동물을 이용한 전임상시험이 생략될 수 있어 더 좋은 신약을 더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번 연구승인은 우리 사회가 더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진전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과제는 국가와 연구팀이 약속한 바를 성실히 수행해 최소한의 인체 자원으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연구의 진보성과 독창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연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보고해야 한다. 우리 사회도 과학자를 믿고 차분히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국가가 연구를 승인했고, 많은 국민이 연구 결과에 기대를 나타내고 있지만, 연구비 지원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생명윤리적으로 중대한 사안을 국가가 심의·승인했다면 이에 걸맞은 연구 지원도 따라야 한다. 개인의 노력과 국가의 지원이 역동적으로 이뤄질 때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김계성 한양대 의과대학 교수·해부세포생물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