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조사권 필요” vs “감독권 중복으로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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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국회에서 발의된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관련 기관들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초점은 한은에 금융회사 단독 조사권을 주는 조항이다. 한은은 통화신용정책 수립을 위해 조사권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와 금융감독원은 통합 감독기관을 보유한 나라에서 중앙은행에 단독 조사권을 준 나라는 없다고 맞섰다.

27일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진동수 금융위원장, 이성태 한은 총재, 김종창 금감원장이 출석해 한은법 개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당사자인 이 총재와 김 원장은 직접 토론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야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확연히 다른 입장을 내놨다.

이 총재는 “현재 공동 검사권이 있지만 정작 필요할 때 조사를 할 수 없다”며 “2006년 금감원에 공동 검사를 요청했는데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당시엔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가 너무 많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 총재가 지난 23일 회의에서 “은행에 필요한 자료를 요구했는데 금감원이 이를 주지 말라고 했다”고 말한 것도 계속 논란이 됐다. 김 원장은 “당시엔 한은의 요구 자료가 너무 과도해 은행 측이 중재를 요청해 그렇게 했다”며 “오히려 한은이 자료 제공에 비협조적”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금감원은 한은이 요구한 자료의 79%를 제공하는데 반해 한은은 우리가 요청한 자료의 60%만 주고 있다”며 통계 수치까지 제시했다.

지난해 금융위기 이전의 대응을 묻는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의 질문에 대해선 전혀 상반된 주장을 했다. 답변에 나선 한은 실무자는 “지난해 상반기 금감원에 은행에 대한 유동성 점검을, 하반기엔 외화자금조달 운용 상황을 점검하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지난해 9월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후에야 검사가 이뤄졌다”고 답했다. 그러나 금감원 담당자는 “이런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한은이 지급결제시스템을 총괄 관리하고 필요한 조사를 하는 개정안에 대해선 진 위원장이 “이렇게 되면 한은이 제2금융권에 대한 검사권을 가지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일부 의원은 “감독원이 기관 이기주의에 빠져 중앙은행이 필요한 자료를 제때 주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밝혔다. 한은에 대해서도 “한은 부총재가 금융위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만큼 당시 시중은행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문해야 했다”고 지적했다(민주당 박병석 의원 등).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이건호(금융전공) 교수는 “한은법이 개정돼 감독권이 중복되면서 금융사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상대 김홍범(경제학) 교수는 “한은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단독 조사권이 필요하다”며 “금감원과 교차 검사를 하면 금융회사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 기획재정위는 29일 다시 회의를 열어 한은법 개정안 처리를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가 반대하는 데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그리 적극적인 입장이 아니다. 지금으로선 본회의 통과가 불투명하다. 임시국회 이후 청와대에 설치될 금융개혁 태스크포스(TF)팀도 변수다. 윤 장관은 “TF팀에서 중앙은행의 권한 문제와 금융 감독체계 전반에 대한 사안을 심도 있게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원배·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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