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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문제, 가족제도가 유일한 대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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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프랑스에서 2003년 8월 발생한 일이다. 유례없이 더운 여름, 많은 젊은이가 바캉스를 즐기는 사이 1만1400여 명의 노인이 집에서 더위에 신음하며 죽었다. 서구에서도 복지가 가장 잘된 나라인 프랑스에서 기껏 더위 문제로 이런 참극이 생겼다는 것은 선뜻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이 급작스러운 사태에 병원에서는 황급히 보호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연락이 되었던 자식조차 죽어버린 시신보다는 자신의 여가가 더 중요했던지 냉담한 반응에 간호사들은 수화기를 내동댕이치며 분풀이를 했다. 그리고 국가의 세금으로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

아무리 불효 자식이라도 부모가 위독하거나 별세하면 만사 제치고 달려오는 우리의 상황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우리는 이 한 예에서 국가의 사회복지 시스템이 가족의 문제를 끌어안기에 너무나 역부족인 실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문제를 사회보장제도에 안이하게 의존하는 서구인의 타성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교육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라 가족의 가치에 대해 우리와는 근본적인 생각의 차이가 있고, 돌볼 여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에 대한 가치관이 우리와 너무 판이하다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재정적 열악함이나 제도의 미비로 선진국과 같은 복지제도가 구축되기에는 요원한 실정임에도 우리는 그 같은 사태를 겪지 않았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우월한 사회복지제도의 기능을 하고 있는 가족제도가 사회안전망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족과 친족의 유대 약화는 향후 이런 안전망에 적신호를 주고 있다. 게다가 이런 전통 가족제도를 반영한 가족단위 신분공시 제도인 호적제가 폐지되고 조부모는 물론 형제자매가 공부상에서 사라지는 개인별 신분등록제가 도입되면 가족 간의 유대는 걷잡을 수 없는 해체에 직면할 것이다.

인구 감소의 직접적 원인은 저출산이다. 저출산은 표면상으로는 보육시설 부족과 양육비 부담 증가 같은 사회복지 시스템의 미비가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일부 정부기관의 결혼.가족 제도의 경시 풍조와 상혼이 결합된 미디어의 문화적 조장 분위기 등이 일조를 하고 있다.

탈(脫)가족 개인 이기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도 고령화 사회의 노인 부양과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가족 제도로서 이런 문제를 나름대로 극복해 왔다. 우리나라의 현재 평균수명은 76세이고 해마다 빠른 속도로 길어지고 있는 반면, 여성 1인당 평균 출산율은 1.17명으로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로, 이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징표다. 가족 해체를 우리 스스로 재촉한다면 사회안전망을 몸소 해체시키는 것으로 사회적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치 못하는 사태가 올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제도를 정신적.제도적.물적으로 더욱 후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의 핵심 가치와 제도로서의 가족은 사회적 기초의 구심력과 현대사회의 병리 현상을 치유할 원심력을 갖고 있다. 하버드대 가족학 교수인 에드워드 와그너는 "한국의 가족 제도야말로 21세기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며 우리의 가족제도에서 희망을 찾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형열 가정과 국가 바로세우기 공의회 홍보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