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국악으로 노인 위로하는 김상식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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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못다한 효도를 외로운 노인들께 대신 한다는 심정으로 북채를 잡게 됐습니다. "

여의도의 한 아파트상가 지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상식 (金相植.45) 씨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의로운 국악인' 으로 통한다.

40넘어 늦깎이 국악인생을 시작한 점도 특이할 뿐더러 '북치고 장구치는' 동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매월 셋째주 토요일 오전11시~오후1시까지 金씨의 식당은 2백여명의 관내 외로운 노인들로 북적댄다.

金씨는 이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대접한뒤 그간 애써 갈고닦은 설장구와 오북솜씨를 걸쭉한 창을 곁들여 선사한다.

한바탕 국악잔치를 벌인뒤 돌아가는 노인들 손에는 조금씩의 교통비가 곁들여지기도 한다.

"어렸을 적 고향인 부안 줄포시장에서 오갑순씨 공연을 보고 '커서 꼭 국악인이 되리라' 고 맘먹었습니다." 하지만 金씨가 국악을 하기에는 너무도 여력이 없었다.

60년대 후반 무작정 상경한 그는 이후 중국집 배달원.나이트클럽 문지기.권투선수.신문배달원등 안해본게 없을 정도로 온갖 고생을 겪어야 했다.

드디어 91년 조그만 식당을 차리게 됐고 어느정도 생활이 정착되자 93년 40세가 넘어 국악 배우기엔 환갑의 나이에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오갑순씨를 찾아갔다.

"남자 제자는 절대 안받는다는 거에요. 그래서 한달동안 매일 찾아가 애원했죠. 부모님께 못한 효도를 대신하고 싶다고요. 결국 제대로 배워 좋은 일에 쓴다는 다짐을 받고 제자로 받아주셨어요. " 이후 지금까지 매일 오후2시만 되면 식당일을 뒤로한 채 스승의 유일무이한 남자 제자가 되어 3시간씩 연습에 몰두하게 됐고, 올초 스승으로부터 '이 정도면 남들 앞에 서도 부끄럽진 않겠다' 는 얘기를 듣고는 당장 2월부터 노인분들을 모시기 시작했다.

얼마전 모친마저 세상을 떠나 이 자리가 더욱 소중해졌다는 金씨는 "겨울엔 노래자랑도 열고 내의도 선물해 따뜻한 연말이 되도록 돕고 싶다" 고 말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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