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비주류-이인제-金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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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관중 (羅貫中) 의 '삼국지 (三國志)' 는 춘추필법 (春秋筆法) 의 역사정신에 따라 조조 (曹操) 보다 유비 (劉備)에게 정통성을 부여했다.

유비의 활약은 미미하고 우유부단했는데, 왜 그랬을까. 그 해법은 관우 (關羽) 와 제갈량 (諸葛亮)에게 있다.

이를테면 전 (前) '삼국지' 의 주인공은 관우고, 후 (後) '삼국지' 의 주인공은 제갈량이다.

이들의 행적과 인품이 후대에 본받을만한 충절 (忠節).인의 (仁義) 라는 교훈적 가치를 남겼다는 뜻이다.

여기서 다행히 이 훌륭한 두사람 모두를 신하로 거느린 유비야말로 과연 덕 (德)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하는 역사적 평가가 적용된다.

'삼국지' 의 가치는 이같은 유비.관우.제갈량의 삼각구도로 형성된다.

지금의 대선정국은 신한국당 내분으로 혼돈상태다.

근본원인은 원초적으로 신한국당 후보경선 후유증에 있다.

그 과정은 마치 '역 (逆) 삼국지' (?) 의 삼각구도를 연상케 한다.

지난 신한국당 경선은 여당사상 가장 민주적인 축제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경선에 탈락한 이인제 (李仁濟) 전지사가 자신의 높은 여론 지지율과 이회창 (李會昌) 후보의 낮은 지지율을 이유로 탈당, 새살림을 차리면서 내란의 불을 지폈다.

그는 경선과정에서 16차례나 철통같이 경선 승복을 공약했다.

그럼에도 투표한 당원들의 의사나 일사부재리 (一事不再理) 의 원칙을 저버리고 후보교체론의 제기와 함께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공약파기란 반민주적 행위를 감행했다.

李전지사는 "확정된 후보의 예기치 않은 중대한 결함으로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돼 국민 여망을 좇아 단독출마를 결행했다" 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이 양심의 소리인지, 언어의 희롱인지는 알 수 없다.

민주국가에서 다수가결의 원칙을 파기하는 것만큼 더 큰 '중대한 결함' 이 또 있겠는가.

여론조사의 마술 때문에 후보결정이 좌지우지될 수 있는가.

조순 (趙淳) 씨는 낮은 여론 지지율로도 지난 95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당히 당선된 바 있다.

또 경기도지사 신한국당 경선에서 불복한 임사빈 (任仕彬) 전지사에게 "서부의 악당도 등뒤에서 총을 쏘지 않는다" 고 했던 이인제씨는 이제 그 스스로가 악당 (?) 이 됐고, '자신을 키운 정치적 아버지' 와 신한국당에 비수 (匕首) 를 꽂는 정치적 패륜을 자행하고 말았다.

이것이 신한국당 경선 후유증의 맥이다.

엄밀히 말해 경선 직후부터 신한국당 비주류측은 이회창 후보의 발목을 잡고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리고 李후보의 지도력 부재를 잔인하게 몰아세웠다.

그럼으로써 李후보 지지율 하락도 배가 (倍加) 됐고, 李전지사 신한국당 탈당의 정당성을 입증시켜 갔다.

李후보로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려우므로 후보를 교체하자는 등, 반 (反) DJP연합을 결성하자는 등등은 사실상 李전지사를 측면 지원하는 것이다.

신한국당 내부의 적은 이렇게 비주류와 李전지사의 양동작전으로 전개됐다.

이제 李전지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다음 단계는 비주류의 탈당파들과 합세한 국민신당의 화려한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일뿐이다.

물론 잔류파는 계속 남아 후보교체의 북을 울려 李후보를 탈진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고는 反DJP연합 국민연대를 통해 李전지사로의 후보단일화 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李전지사와 신한국당 비주류 대부분은 당초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신하 (?) 들이다.

그중엔 정치적 철새도 있지만 대부분 오랜 세월에 걸쳐 김심 (金心) 을 잘 헤아려 행동하는 민주계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과 김심도 무관치 않다고 의심받는다.

이심전심 (以心傳心) 상 불가분의 심리적 교감이 미심쩍다는 분석이다.

사실 金대통령의 신한국당에 대한 모호함과 우유부단이 내분의 커다란 요인이었다.

그러고 보면 신한국당 내분과 관련한 혼돈의 '逆삼국지' 는 김심과 李전지사와 비주류가 절묘하게 포진된 반 이회창 3각 정치 구도로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기 때문일까. 현 정국의 혼미는 金대통령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병철<유도회 사무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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