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옹호하는 한나라 신자유주의 비판론자 부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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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보호무역으로 성장했던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자유무역, 즉 신자유주의를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선진국들은 사다리(보호무역)를 밟고 올라섰으면서도 다른 나라들이 그 사다리를 쓰는 건 방해한다는 의미로 ‘사다리 걷어차기’란 표현을 쓰곤 한다. 이 같은 주장을 담은 그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국방부 금서 목록에 올라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그는 근래 “30여 년간 자유무역, 자유시장주의 이데올로기에 홀려 이런 세계 경제위기가 왔다”며 “미국·영국 등 선도적인 나라들은 (신자유주의를) 다 버리는데 왜 자꾸 우리만 열심히 하려고 하는지 안타깝다”고 토로한 일이 있다. 감세와 규제 완화, 시장 개방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이명박 정부만 고수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한나라당이 이런 장 교수와 소통하기로 했다. 국민소통위가 다음 달 6일 장 교수를 초청,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소통위원장인 정두언 의원은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국가 전략이 신자유주의로 왔는데 그대로 갈 거냐, 궤도를 수정할 거냐 판단할 때가 왔다”고 설명했다. 사실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뒤 진보 진영에선 “이번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기도 요구했다.

반면 여권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여권이 공유해 온 경제 철학과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심이 덜했던 건 아니었다. 종종 “감독받지 않은 극단적 신자유주의 체제가 오히려 시장에 반한다”(정태근 의원), “한국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에 기초하면서 전면적 금융시장 개방과 금융허브를 지향하는데, 최근 세계 경제의 재편 흐름과는 배치된다”(강용석 의원)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방만한 자유주의적 정책이 세계 경제에 일시적 어려움을 초래한 것은 인정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끝났다는 비판엔 동의하지 않는다”(나성린 의원)는 입장이 맞서곤 했다. 다른 여권 고위 관계자도 “미국의 규제 완화 수준이 10에서 9로 물러선다고 2, 3 수준인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건 잘못이다. 4, 5까진 가 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장 교수와의 세미나는 이 같은 논박 속의 여권으로선 공론화의 시작인 셈이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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