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단합된 힘만이 추가테러 막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23일 새벽 이라크 무장저항단체에 의해 납치돼 있던 김선일씨가 결국 피살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비인도적이고 반인륜적인 만행으로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김선일 씨는 평소 중동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선량한 학생일 뿐이고 이라크에 간 것도 통역대학원에서 아랍어 공부를 하기 위한 학비를 벌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현재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 부대나 앞으로 파견될 부대도 그들 무장테러단체와의 전투가 주 목적이 아니라 '평화.재건'임무를 띤 부대다. 그리고 한국 국민은 과거에도 이라크에서 수많은 건설사업을 통해 이라크 국민을 도왔다. 이는 이라크 국민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선일씨가 단지 현재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 의료지원 및 공병부대와 한국 정부의 추가파병 계획 때문에 살해됐다는 것은 이 만행을 저지른 테러단체의 속성이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현 이라크 주둔 부대 철수 및 추가파병 계획 철회와 같은 조건을 내걸고 그들의 만행을 과시하는 그 자체가 목적인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속성의 테러단체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유사한 사건이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번 김선일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와 정치권은 또다시 이라크 추가파병과 관련해 찬반논쟁의 격랑에 휩쓸릴 조짐이다. 이런 가운데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통해 이번 테러만행을 강력히 규탄하면서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결심"을 밝힌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다. 정치권은 이제 대통령 특별담화에 담긴 추가파병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관한 국론분열을 막아야 한다. 이 국론분열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며, 이는 다시 한반도 안정과 평화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주도적 입지 확보에도 손상을 줄 뿐이다.

지금 전 세계는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이라크 평화정착 및 재건이 그 전쟁의 핵심이며, 그 전쟁이 비록 미국의 일방적인 주도하에 수행되고 있다 하더라도 세계 모든 주요 국가들은 직.간접으로 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고 또 미국 주도에 협력하고 있는 것이 현실적 상황이다. 이라크 평화 및 재건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세계질서의 향배가 결정될 것이며, 실패는 세계질서의 혼미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현재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 확산방지 등의 국제안보상의 무거운 짐을 미국을 대신해 질 수 있는 나라도 없고, 또 미국의 중심적 역할 없이는 유엔 등 국제기구도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세계질서의 혼미는 바로 동북아정세의 불확실성과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킬 것이며, 이는 바로 우리 자신의 안보위협 상황을 의미한다. 이 연쇄 반응적 상황의 악화는 남북 민족공조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역내 주요 국가들은 물론 전 국제사회가 힘을 합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한반도문제가 이미 남북차원을 넘어 국제문제화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안목과 시야를 한반도 차원 이상으로 넓혀야 한다.

특히 이라크 평화정착 및 재건을 위한 국제적 활동은 6월 30일 이라크 주권이양과 함께 더 활기를 띠게 될 것이며, 걸프협력협의회(GCC) 6개국의 파병도 예상되는 상황임을 감한할 때 각종 테러단체들의 자살폭탄공격, 납치 살해 등의 무모한 만행도 수그러들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는 이번 김선일씨의 죽음을 단순히 무의미한 희생으로 간주하며 파병계획 철회를 주장하기보다 김선일씨의 희생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치른 한국과 한국 국민을 대신한 순국의 희생이며, 그 희생의 대가가 이라크와 한반도의 평화.번영으로 결실되도록 힘을 합해야 할 것이다.

박용옥 한림대 교수.전 국방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