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서 펼쳐진 '장보고의 꿈'…극단 현대극장 프라하 공연 성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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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체코 프라하의 가을은 옛 '벨벳혁명' (무혈 정치혁명) 의 진원지 바츨라프광장에도 이미 깊어 있다.

가로수 잎사귀는 제법 홍조를 띄고 있고, 광장을 꽉 메운 젊은이들의 차림새에서도 가을이 흠씬 묻어난다.

동양의 이방인에게는 영 어울리지 않는 공간. 바츨라프광장을 지척에 두고 있는 1백40년 전통의 스타트니 (스테이트) 오페라극장은 그래서 더욱 유별났다.

지난 8일 이곳에서는 극단 현대극장의 뮤지컬 '장보고의 꿈' (김지일 극본.김덕남 연출) 공연이 있었다.

'장보고…' 은 1천년전 청해진 (지금의 완도) 을 무대로 해상제국을 꿈꿨던 신라 장보고의 일생을 그린 사극. 이날 공연은 주 체코대사관 (대사 김재섭) 주최로 이곳 정.관계인사와 각국 공관원, 한국 상사 주재원과 유학생 1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저녁 8시에 시작된 공연은 온통 열광의 도가니였다.

외국인들은 작품에 대한 이해에 앞서 생소한 한국의 문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는 데에 무척 고무된 듯했다.

시종 무대위에 매달려 있는 체코어 자막과 영문 팸플릿를 번갈아 보며 잠시도 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날 공연의 백미는 법화원에서 펼쳐지는 예불과 바라춤이었다.

'쩡 쩡' 귀를 때리는 바라의 굉음과 고깔에다 울긋불긋한 의상을 걸친 배우들의 몸놀림에 넋이 나간듯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가끔 장내가 술렁이곤 했다.

또 서라벌 공격에 나선 장병들의 웅혼한 기상을 담은 '진군의 노래' 와 장보고의 비장한 죽음 뒤에 울려퍼지는 '천년을 닫힌 바다를 열자' 는 피날레 곡이 울릴 땐 일순 숙연해 지기까지 했다.

이날 공연엔 탈리르 문화부장관과 파카노바 법무장관이 직접 참관, 체코 정부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주 체코대사관 하태역 서기관은 "10여명의 체코 상하의원를 비롯, 프라하 주재 각국 외교관 거의 전부가 참석했다" 고 귀띔했다.

현지인들에게 '장보고…' 은 이국취미를 떠나 제대로 된 '작품' 으로서 감흥도 불러일으켰다.

프라하 찰스대학 한국어과 블라디미르 부첵 교수는 "고전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려는데서 약간의 무리는 있었지만, 서양인들의 신비주의적 관점을 수정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작품" 이라고 평했다.

그간 체코에 소개된 한국문화로는 93년 한국 문화사절단의 '천년의 소리' 공연과 올 5월 금호4중주단의 '프라하 봄 음악제' 참가등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장보고…' 은 한국문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작품으로는 미흡했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너무 고루했기 때문. 프라하연극학교에서 연출을 공부하고 있는 신호씨는 " '코리아' 란 이름밖에 모르는 이곳 사람들에겐 너무나 먼 옛날 이야기였다" 고 지적했다.

'장보고…' 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6일) 와 프라하 공연에 이어 스위스 바젤 (10일) 과 스페인의 마드리드 (14일)에서 모두 3차례의 공연을 더 가졌다.

17일 귀국 예정.

프라하 =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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